3월30일 사순 제4 주일
사순 제4주일의 복음은 희망의 순례의 희년에 어울리는 주제이다. 입당송은 자비로운 아버지를 모시는 자녀들이 얼마나 기쁜지를 노래하는데, 사순시기 가운데 기쁨을 노래한다고 하여 오늘을 전통적으로 ‘장미주일’이라 부른다. 장미주일은 사순시기가 자비로우신 아버지와 함께 기쁘게 살아가기 위한 시기임을 되새겨 준다.
사람은 자기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알게 되고 죽을 것 같이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원망이나 후회는 뒷전으로 밀어 놓고 살 궁리를 먼저 하는 법이다. 절실히 살 궁리를 하는 사람에겐 체면도, 가식도 없다. 삶의 바닥까지 내려간 탕자는 아버지를 기억해내며 토로한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오늘 복음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 드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대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들려준 비유다. 이렇게 보면 비유 속 첫째 아들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상징하고, 아버지 가산을 탕진하고 후회하며 돌아오는 둘째 아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상징한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죄라고 생각할 정도로 죄인들을 싫어했다. 이런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기꺼이 맞아들이시어 그들과 음식을 드시며 잔치를 벌이신다. 그러니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불만은 높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다 믿으며 아무 잘못 없다고 으스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잊은 것이 있었다. 하느님은 모두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며 죄인들에게나 의인들에게나 햇볕을 주시고 비를 내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또 그들은 그리스도의 황금률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너희가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의 근본인데, 이것을 잊고, 잃고 살았다. 해서 내로남불 곧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 우기는 아이들 같았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아버지로부터 멀리 떠나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것은 그가 받을 상속에만 집중 되어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큰 아들은 아버지 곁에 몸만 있었고, 마음은 이미 멀리 떠나 입술로만 공경하는 허례 속에 살았다.
큰아들의 말투를 보면 그는 이미 아버지를 떠나 있었다. 성경의 본문을 보면 아우를 가리켜 저 아들이라 부른다.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 …” 곧 탕자가 아버지의 아들은 될지 몰라도 내 동생은 절대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라고 수정해서 그 둘이 형제 간임을 분명히 밝히신다.
오늘 복음은 죄인들에게 내리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세심하게 묘사한다. 맨발로 달려 나와 안고, 입을 맞추고, 옷을 입히고, 살찐 송아지를 잡게 하고, 잔치를 벌인다.
아버지의 마음을 슬프게 한 것은 아들이 잘못을 저질렀음이 아니라 사랑해 줄 아들이 옆에 없다는 것이었다. 있었으면 더 잘해 줄 수 있는데, 떠난 아들이 못내 안타까웠는데,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찢기고, 찢긴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큰 아들은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여태껏 아버지를 배반 한 적이 없는데 왜 나는 염소 한 마리도 주지 않으셨을까? 하며 자신만 생각한다.
큰아들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었다. 아버지가 이렇게 속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지금 잔치며, 옷, 금가락지, 송아지 이것이 무슨 대수냐? 죽었다고 생각했던 애가 돌아왔다. 죽었다고 생각하고 슬퍼하던 그 애가 돌아왔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너는 송아지, 잔치, 네 기분, 네 감정에 그리도 충실하단 말이냐? 무엇이 너를 그렇게 만들었느냐?" 큰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또 한 번 찢어 놓는다.
기쁨의 주일, 장미 주일이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절제와 극기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부활의 기쁨을 생각하여 침통 하지 말고 ‘기쁘게’ 남은 사순 시기 보내기를 바란다. 이 기쁨은 나의 구원을 생각하며 누리는 기쁨뿐 아니라 공동체와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뵙는 기쁨이다. 이제 아버지와 함께 즐겨야 한다. 살찐 송아지를 잡고 술을 마시고 춤추고 잔치를 흥겹게 만들어야 한다. “애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죽었다고 생각한 우리가 되돌아왔다면(회개) 이 어찌 기쁘고 즐겁지 아니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