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6일 사순 제 5 주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2025년 4월 6일 사순 제 5 주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4 6일 사순 제 5 주일

오늘 복음 시작에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신 뒤 이른 아침 성전으로 올라가시는데, 이는 매우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올리브 산은 예루살렘 성전 바로 동쪽 편에 위치해 있으며, 성전에서 보면 이른 아침 해가 뜨는 곳이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아침 햇살이 올리브 산에서 성전으로 들어가듯 하느님 영광이 올리브 산에서 성전 안으로 들어오리라 믿었다. (에제 11 참조)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아침 해가 뜨는 시간 올리브 산에서 성전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은 마치 하느님의 영광이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올리브산은 예수께서 인간에게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피땀 흘리며 받아들일 장소요, 그 성전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장소다.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예수님께서는 앉아서 그들을 가르치신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포착한다. 간음한 여자를 현장에서 잡아 모든 이들 앞에 보란 듯이 내세운다. 그리고 예수님께 묻는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8,5) “어떤 남자가 자기 이웃의 아내와 간통하면 간통한 남자와 여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레위 20,10)는 것이 율법이다. 그런데 남자는 없고 여자만 있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께 재판에 대한 공정성이나 의견을 묻기 위함이 아니라, 올가미를 씌우자는 계략이다. 그 상황에서 그 여인을 살리라고 하면 율법을 어기게 되고, 법대로 죽이라고 하면 평소에 사랑과 용서를 설교하시던 모습과 다르게 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예수님은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한 듯하다. 더구나 예수께서 궁지에 몰린 것처럼 즉시 답을 주지 않으니 그들은 신이 나서 더 재촉한다.

땅바닥에 뭔가를 쓰고 계시던 예수님이 드디어 입을 여신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7) 과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많은 말이 필요치 않았다. 이 한 말씀에 모든 것이 해결된다 아기를 반으로 잘라서 각 어머니에게 나눠주라고 한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운 분이 여기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기존의 관습과 제도와 법률에 대한 생각을 뒤엎어 버리시고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신다. 그러나 율법을 없애려 오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생명을 주는 데 이바지해야 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시며 율법 완성자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다시 고개 숙여 땅바닥에 뭔가를 쓰신다.

 

  

재촉하는 그들과 여유를 두시는 예수님은 아주 다르다. 그들은 예수님을 궁지로 몰고 갔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신다. 당신이 판단하지 않으신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묻던 율법교사가 누가 자신의 이웃인지를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깨닫게 하셨고, 자캐오가 남을 속인 것이 있다면 네 갑절로 갚겠다고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셨듯이 군중과 그 여인에게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신다. 그들은 나이 많은 이부터 차례로 떠나간다. 이 말씀으로 군중도, 여인도, 예수님도 그 누구도 진 사람이 없는 이상한 현실로 바뀐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도 자신의 진실을 대면했으니 예수님께 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내면의 승자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예수님을 붙잡아 십자가에서 죽임으로 결국 패자의 길을 선택한다.

나도 네 죄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8,11). 여인에게 이제부터 진정한승자의 삶의 기회를 주신다. 예수님은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그러면 나도 네 죄를 단죄하지 않는다.’하지 않으시고, 단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먼저 표명하신다. 지난 주 복음에서 돌아온 탕자에게 조건 없는 용서를 보여주신 아버지처럼 예수님도 아무런 조건을 붙이지 않으신다. 물론 그 여인의 죄를 묵인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죄 지은 사람을 처벌함으로써 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죄 지은 이에게 새롭게 살 수 있는 길을 터주심으로써 악을 이기신다.

똑같은 죄를 다시 짓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신비롭게도 우리는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고 산다. 그러니 이 말씀이 우리에겐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을 반복적으로 불행하게 살지 말라는 뜻으로 듣고, 죄를 짓고 불행에 빠져 힘들게 살지 말라는 그분의 배려의 말씀으로 듣는다면 이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의 말씀이다.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 뒤에는 죄를 용서 받은 사람은 생활이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고해성사만 믿고 매일 같은 죄를 반복하며 매일 같은 삶을 살아가서는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죄로 인해 상처를 주고 산다면, 다시 죄를 지어 상처 내는 짓을 하지 말라는 그분의 사랑의 말씀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사순시기의 막바지 이번 목요일에 판공성사를 보기 전에 먼저 오늘의 복음을 읽고, 묵상해 보시기를 권고한다.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에제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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