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과 징표
누구든지 새벽미사를 가거나 새벽 기도회를 가려면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저녁에 일찍 자는 것도 아닙니다.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돌아와 늦게 자더라도 아침에
는 일찍 일어나 교회나 성당에 가서 새벽 미사나 예배를 드리는 분들의 생활이 수도자인 저보다 더
엄격한 생활을 하시는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제가 본당에 아침미사가 생겼습니다.
저녁미사 보다 더 많은 분들이 참석하시는데 거의 같은 분들이 새벽미사에 참여하시지만, 그분들의
얼굴에는 피곤함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제가 7시 30분 미사를 봉헌하려면 저는 7시경에 일어나
도 시간에 늦지 않고 미사를 봉헌 할 수 있습니다. 적당히 세수하고 면도하고 옷 갈아입는 시간이
약 15분, 그리고 성당에 가는 시간은 1분도 채 걸리지 않기 때문이지요. 수도원에서 살 때에는 저
는 성당하고 붙어 있는 방에 살고 있었으니 10초 이내면 성당에 갈 수 있습니다. 물론 전반적인 수
도 생활 모두가 편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앙생활만을 놓고 본다면 저는 참으로 편리한 생활
을 하고 있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증표를 보여 달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선택 받
은 민족이었고 하느님 말씀의 풍성함이 있었습니다. 많은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기 때문
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집중하기 보다는 징표나 기적을 원했습니다. 오히려 선택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언자들의 말을 외면하고, 그들을 죽이고, 박해했으며 듣기 좋은 말만 골
라 들으려 했던 거짓 자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 이였던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설교에 모두가 회개하고 그들의 생활을 바꾸었습니
다. 단 한 번의 말씀 선포로 그들이 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열린 마음 때문이고 하느님 말씀에
목말라 하던 그들의 절실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 개인의 수도생활이 악 하리 만치 게으름에 젖
어 있을지 모른다는 자책이 오늘은 깊게 다가옵니다. 요나보다 더 훌륭한 설교가인 예수님의 말씀
을 듣고서도 회개치 못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예수님을 따르며 살겠다고 서약한 수도자의 삶이
게으름으로 젖어있다면 이스라엘 백성이나 저나 모두가 악한 삶이되는 것은 자명하기에 그렇습니
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보다 더 큰 지혜이신 그분을 알면서도 생활을 바꾸지 못
한다면 나는 악한 사람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제 방학도 끝나고 아이들도 학교로 돌아가는 때 입니다. 우리 모두가 새롭게 시작되는 생활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게으름에 익숙해진 생활에서 벗어나 깨어있는 말씀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매 미사 때 마다 들려지는 복음의 말씀이 그저 성서에 나오는 글을 사제가 읽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사제를 통해 들려지는 요나의 외침이고, 솔로몬의 설교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좀 더 자주 기도하겠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좀 더 열심히 살겠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시간들이 왜 이리 부끄러워지는지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해져 버린 게으름 때문에 편리함을 살고 있는 시간들이 부끄러워지는 요즈음입니다.
– Fr. 김 두진(바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