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아주 오래 전에,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들이 원주민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믿을래? 안 믿을래?” 그리고 안 믿는다하면 무식한 미개인들 이라는 이유로 단두대에서 목을 잘랐답니다. 남미의 많은 나라들의 기독 문화는 이렇게 시작되었지요. 그래서 아무리 좋은 복음, 아니 생명을 주는 복음이라도 사람들에게 강요되어진다면 옛날 선교사의 단두대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생각하는 복음 전파는, 사도 바오로의 율법 선생이셨던 가무리엘 선생의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도들이 한 기적을 보고 놀라면서도 박해하고 죽이려는 유다고 지도자들에게 학자다운 논리로 진리를 옹호하셨던 그분의 말씀 말입니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이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다룹시다. 그전에 어떤 사람이 백성을 선동을 하고 자기를 따르게 한 적이 있는데, 그가 죽으니 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에게서 손을 떼고 가만히 내버려두자는 겁니다. 만약에 이 사람들이 자기들의 계획으로 행동한 것이라면 이들은 저절로 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라면 여러분들이 그들을 없앨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문제는자칫하면 여러분은 하느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될지 모릅니다.” <사도행전 5장 참조>

 

복음은 그래서 폭력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기쁜 소식이지요. 진리는 저절로 퍼져가게 되어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메가폰을 들고 예수를 믿으라고 소리소리 질러대는 빈 소리보다 조용히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도 모르게 하는 행동이 많아지면 세상이 기뻐지고 복음적인 세상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구원을 가져다주지만, 예수도 부처도 진리이며, 그 진리 안에는 하느님께서 거처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진리에 있어야 하기에 그 믿음이 구원을 가져다준다고 믿어야 합니다. 해서 내 생각만 옳다는 주장은 어떤 의미론 폭력이며, 남의 소리를 안 듣는 무지라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하느님이 한 분이심을 믿는다면, 부처든, 예수든, 하나님이던, 하느님이던, 그 명칭엔 상관없이 그분이 한분이신 창조주이실 겁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가 부르는 명칭과는 상관없이 더 크신 분이실테니까요.

 

신학은 그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무신론까지요. 안 믿는다는 것도 믿음이니까요. 진리는 늘 거기에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진리는 한 곳에 있습니다. 내가 믿는 종교가 옳다고 핏대세워가며 삿대질로 서로를 공박한다면, 그건 역시 땅 따먹기 싸움에 불과 할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말로 하는 복음 선포 보다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도록 함께 행동하는 것이 하느님을 선포하고 그분의 사랑을 알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데 우리의 믿음은 겨자씨만도 못 한가 봅니다.

 

서울 밤하늘에 밝혀진 엄청 많은 십자가의 네온 등불들을 보면서 세상이 왜 이리 어두운 가를 생각하면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는 이런 불필요한 싸움 보다, 차라리 켜져 있는 십자가의 불을 꺼 버리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하게 솟은 교회의 십자가와 찌그러져 울고 있는 우리의 이웃을 한꺼번에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울고 있는 이웃 안에서 하느님의 눈물을 볼 수 있을 때, 고통당하는 이웃 안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볼 수 있을 때, 복음은 세상에 전해진다고 말하면 너무 쉬운 복음 선포일까요?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 Fr. 김 두진(바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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