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그리스도
대축일에….

 

이번
주에는
날씨가
많이
쌀쌀합니다.
처음으로
맞는
쌀쌀함이라
체감
온도는

내려가는

같습니다.
이런
날씨에는
따뜻한
랫목에
앉아
화롯불에
고구마라도
구워
먹으며



친구들과
두런두
이야기
나누고
놀던

생각이
그립습니다.
지금은
아랫목,
목이
없는
집에
살면서
따뜻함
대신
편안한
소파에
앉고,
친구

TV 앞에 앉아
누군가와


더불어가
아니고
혼자서
생각없이
TV 떠드는
대로
지내기가
훨씬
수월해진
요즈음
입니다.
우리가
과거로부터
잃어버린
많은


적어도
이야기를
나눌
친구
혹은
잠깐의


여유는
찾아와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오늘은
교회
전례력으로
마지막
주일입니다.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

대축일
지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왕국이
아닌
당신의



왕국을
다스리시
왕이심을
교회는
고백합니다.

왕권은
죽기까지
순명하심으
성부께
들어
높임을
받으시고(필립
2:8-9) 당신
왕국의
영광
차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왕은
구약에서
예언되고
준비되었습니다.
가나안
정착시기에
왕정의
필요를
느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훼의
이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왕을
탄생시키고
하느님으로


부터
왕조의
존속을
약속받습니다.
(2
사무 7). 그러나
윗왕조가
몰락하자
종말의
왕인
메시아의
약속이
생기게
됩니다.
(
에제 34). 신약으로
와서
(메시아)
대한


백성들의
기대는
고통받는
이스라엘이
강력한
왕의
출현으로
식민지에서
구하고,
하느님의
영광으로
강대국을
만들어

인간적인
희망과
현세적
왕권관념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왕이신
예수님
지상생활
동안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왕국은
그런
왕국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처럼


빌라도
앞에서
당신이
이스라엘
왕임을
부인하지
않았으나
당신
왕국은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십니다.
(
요한 18:36-37).

 

왕이라는
표현은
권력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아닐까
싶습니.
다른
사람의
생명도
자기
생각과
뜻대로
좌우할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사람이
왕입니다.
이런


의미를
갖는
왕은
극에
등장하는 조선시대의 사람들에게서나, 책에서 읽거나 만날 있는 왕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복음을 통해 만난 이신 그리스도는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니라 오히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빌라도 앞에 죄인으로 서신 초라한 왕이십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세상의 권력자인 빌라도 앞에 초라한 모습으로 예수님을 왕이 지칭하고 그분을 따르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저 인도의 위대한 지도자 비폭력의 대명사인 간디나 미국의 지도자였으며 흑인 지도자였던 마르틴 루터 목사 정도의 이셨을까요? 아닙니다. 리스도왕은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같으신 분이셨지만, 죽음에 이르는 순명을 통하여 아버지로부터 들어 높이심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 하느님은 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으시고 어려운 방법을 택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셔서 우리를 다스리시면 아주 간단한 문제를 바보같이


십자가에 박혀 돌아가셨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아니 믿음으로는 믿는다고는 하나 세상의 눈으로 보면 여전히 야속하고, 한심스럽, 허망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우리의


믿음은 이스라엘 백성들 기다리던 막강한 왕을 기다리는 것과 다를바 없이 기약없는 연약한 믿음입니다. 아니 하느님이 알아서 다하시고 우리는 무것도 하지 못하는


유아기적 신앙의 소산입니다. 마치 사과나 아래 누워 사과가 입으로 먹기 좋게 쪼개어져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과 다름없는 오지 않을 희망입니다. 오히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삶을 우리도 살아내야 함을 빌라도 앞에서 당당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목소리를 는다.

 

아픈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죽은 이들을 살리셨던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며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셨던 그분의 삶이 리의 삶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삶이라 빌라 앞에서 당당히 말씀하십니다.

 

해서 신앙인이란 십자가를 지는 사람을 말합니다. 힘겹지만 상에서 합당한 신앙인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신 어린양이 지셨던 십자가는 수치와


모욕을 뛰어넘어 생명과 사랑을 세상에 가져오게 하는 구원의 힘이었음을 독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 혹은 왕이라고 백하는 신앙인은 예수님이


증언하신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생명을 읽어내는 이들의 신앙이 리스도 신앙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생명이 하시는 일이 리를 위한


진리가 됩니다. 하느님은 용서하고 살리시는 분이십 니다. 우리가 배워서 실천해야 하는 진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나라는 세상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오늘 말씀은 그분으로 인해 열리는 나라는 힘으로 혹은 권력으로 군림하고, 판단하고, 억압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용서하 살리시는 분이시며 자유를 실천하는 신앙인이 따라야 왕이심을 신앙 안에서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왕권을 제자들에게 주시어 그들도 왕다 자유를 누리며 극기와 거룩한 생활로써 죄가 자신들을 지배 하지 못하도록 하고(로마 6:12)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겸손과 인내로써 자기 형제들을 그리스도 왕에게로 인도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바로 왕권으로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


(교회헌장 36).

 

                                                                                                                        – Fr. 김 두진(바오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