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디 있느냐?

너 어디 있느냐?

지난주에는 이래도 좋을까 싶을 정도로 날씨가 좋아 겨울이 끝났나보다 했는데 이번 주는 조금 쌀쌀합니다. 그래도 시카고의 3월의 날씨가 이정도면 보너스 같은 날씨라 기쁘게 지냅니다. 밖을 보면 추위에 떨던 나무가 생명의 빛을 띠고 있고 성격 급한 목련화는 벌써 눈이 나와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나무는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따가운 햇볕이 내려 쬐면 햇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삽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부드럽고 아름답게 가꾸어져 나갑니다. 봄에 푸른 옷을 입히면 푸른 옷을 입고, 가을에 단풍 옷을 입히면 단풍 옷으로 갈아입고, 겨울에 옷을 벗기면 앙상한 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죽은 듯 살아갑니다.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듯이 말입니다. 나무를 보면서 어떤 처지에서든지 항상 하느님의 섭리에 온전히 순응하고 사는 나무는 참으로 거룩합니다. 그래서 자연은 아름답고 거룩한 것인가 봅니다.

자연은 하느님의 숨결인지라 하느님께 순응하건만 사람만이 하느님의 섭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기를 쳐드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추우면 춥다고 불평하고 더우면 덥다고 짜증을 부리지요. 하느님의 섭리에 반항하는 무리, 아마 그것이 우리네 삶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느님께 순응하면서 나이를 먹으면 아름다운 모습 즉 하느님을 닮은 거룩한 모습으로 변해 가지 않을까하는 희망도 생깁니다.

 

자연이 아는 진리를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만 모르고 사는 건 아니겠지요? 알아도 아는 대로 살지 않는 것일겁니다.  자연은 진리대로 살고 인간은 그 진리를 알면서도 살지 않는 것이 자연과 인간과의 차이이지 싶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번 주 복음을 통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연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봄에 뿌린 밀 씨가 땅에 떨어져 죽었기에 싹이 나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듯이 우리들도 자라야 하는데 자라기 위해선 먼저 죽어야 합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은 만큼 자라나야 합니다. 우리가 자란다는 것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처럼 하느님께 대한 반항을 죽여야 하고, 하느님께 대한 불평을 죽여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연이 하느님께 절대적인 순명을 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섭리에 순순히 순응하는 모습으로 길들여지는 것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우리가 죽지 않기 때문에 툭하면 하느님께 또 이웃에게 악을 쓰고 대들고 이를 갈며 투덜대는 것 아니겠습니까?  벼들이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이 우리도 나이를 먹으면서 고개를 다소곳이 숙여야 자라나는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고, 나이 먹음의 무게가 실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까요?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겸손해진다.”는 것입니다. 겸손을 라틴어로 “humilta”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땅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땅은 가장 낮은 곳이며 누구나 밟고 다닙니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어린이, 어른, 미운 사람 고운사람, 의인, 죄인 누구나 할 것 없이 밟고 다녀도 땅은 불평이나 거부를 하지 않습니다. 땅은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비를 받아들이고 햇빛을 받아들이고, 쓰레기를 받아들이고, 침을 뱉으면 침을 받아들입니다. 추위를 받아들이고 더위를 받아들입니다. 땅은 거부하는 법도 불평하는 법도 없습니다. 모든 것에 모든 것이 되어줍니다. 그것이 땅의 겸손함이고, 그것이 땅의 봉사요 섬김입니다. . 인간에 대한 봉사요 섬김, 자연에 대한 봉사와 섬김, 하느님께 대한 봉사와 섬김입니다. 그래서 겸손이라는 단어 humility는 흙이라는 뜻의 humilta라는 라틴어가 어원이 됩니다. 해서 땅에 떨어져 죽고 썩어 땅과 한 몸이 되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라고 자연과 복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오늘 복음에서는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이도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한 알의 밀알은 예수그리스도를 말하며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당신의 죽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섬기기 위해 가장 낮은 곳인 땅에 고개를 떨구셨습니다. 과연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이도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이 있는 곳에 우리도 함께 있는가? 하는 질문은 나를 무척이나 부끄럽게 합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봉사를 거부하고 겸손의 미덕을 멀리하고 있는지요? 하나도 죽지 못하고 오히려 더 팔팔하고 뻣뻣합니다. 모두 다 자기가 잘났고 최고인지라 옆의 사람 모두가 떠받들어줘야 직성이 풀리는 교만이 우리를 죽지 못하게 합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숨었을 때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너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마 지금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그렇게 묻고 계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 어디 있느냐?’ 예수님 곁에 즉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의 의미를 깨달은 그분 곁에 머무는가? 아니면 아직도 아귀다툼 속에서 교만으로 겸손의 땅을 밟고 그렇게 하느님께 삿대질하고 있는가?

 

이렇게 Parking lot 한편에 서있는 죽은듯한 나무를 통해서도 하느님은 말씀하시는데 밀알로 죽어간 그분의 사랑과 부활을 이웃 안에 볼 수 없는 감겨진 눈이 부끄럽고 안타깝습니다. 그나저나 여러분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 Fr. 김 두진(바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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