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애바악!!!
요즈음 젊은이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대박"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설명합니다. "현대 한국어, 특히 젊은 계층에서 매우 자주 쓰이는 단어이며, 감탄사로 묘사되고 있다. (대~애바악!!!) 이라 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국내외에서 대체로 젊은 여성들의 입버릇으로 인식되는 상황 뒤에 '사건'을 붙여서 '대박사건'이라고 하는 변형어도 많이 쓰인다."
오늘 복음 말씀을 들은 젊은이들이 외치는 말은 바로 "대애~박!"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의 대박사건은 첫 번째로 보물의 비유이고 두 번째는 좋은 진주의 비유입니다. 첫 번째의 보물은 농부가 발견하고 상인은 좋은 진주를 발견합니다. 이 두 비유에서 공통된 말씀은
"가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그것을 산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 시절의 이스라엘은 전쟁이 잦아 밭에다 보물단지를 숨겨 두고 피난하는 수가 있었습니다. 피난 간 사람이 잘못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 그 보물단지는 오랫동안 밭에 묻혀 있게 됩니다. 그런데 가난한 소작인 또는 날품팔이꾼이 남의 밭을 갈다가 우연히 보물단지를 발견하게 되면 발견된 보물은 법적으로 밭주인에게 속하기에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다시 숨겨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44)
대~박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옛말로 팔자가 폈습니다.
또 다른 비유는 애써 찾아다니다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한 상인입니다.(45–46) 지금이야 인조 진주가 많아 어린이들도 목에 걸고 다닙니다만, 고대 사회에는 인조 진주가 없었기에 진주가 매우 값진 보물로 거래되었답니다. 상인이 발견한 진주가 너무 좋은 진주라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삽니다.”(46)
한사람은 우연히 발견했고 다른 한 사람은 애써 찾다가 얻게 됩니다. 우연이든 애써 찾았든 그들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삽니다.
또다른 비유 말씀으로 그물의 비유인데, 갈릴래아 호수에는 20여종의 많은 물고기가 있었습니다. 붕어, 잉어 같이 먹을 수 있는 물고기가 있는가 하면, 뱀장어나 메기처럼 비늘이 없는 물고기는 율법에서 불결한 식품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먹을 수 없는 물고기 입니다. (레위11,10-12, 신명14,9–10) 보통 어부들은 먹지 못하는 물고기들은 다시 호수로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호숫가에 그대로 버립니다. 이는 종말심판을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최후 심판 때에는 심판관인 사람의 아들이 자비를 행한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무자비한 사람에게는 영원한 벌을 내리시는 언도한다는 마태오 복음의 최후 심판에 대한 이야기와 같은 맥락입니다. (마태오 25, 31-46 참조)
지난 두 주간에 걸쳐 들었던 하늘나라의 비유 말씀 중에서 오늘 세 가지 비유는 마태오 복음에만 나오는 비유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느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와 보살핌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하늘나라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기쁨’ 중에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그것을 사는 대박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늘나라의 놀라운 가치를 대면한 제자들은 그 가치에 압도되어 오로지 하느님의 사랑과 그 사랑에 맞갖은 삶을 살아가고자 자기들이 가진 모든 것을 바쳐 투신했음은 복음서에 여러 곳에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늘나라는 발견한 모든 이에게 열려 있지만 그 가치에 합당한 삶이 요구된다는 것을 그물의 비유가 전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어부는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아, 먹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가려냅니다. 오늘 복음말씀의 표현으로는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버립니다.”(13,48) 하늘나라는 모두에게 열려져 있지만 그 가치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과연 우리는 주님의 그릇에 담겨질 것인지, 밖으로 던져질 것인지는 하느님의 협박(?)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자유로운 결단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신 뒤 “너희는 이것을 깨달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비유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그 가치를 살아가는 제자들의 선택과 결단으로 실천되는 삶 안에서 드러납니다.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52)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마칩니다. 초대교회인 마태오 공동체에는 그리스도교계 율사들이 있었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도 그 율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설교 주제인 하늘나라를 익힌 율사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새것'인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 '헌것'인 구약성경과 율법을 꺼내 주는 집주인처럼 된다고 하십니다. 즉, 그리스도교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언행에 비추어 구약성경과 율법을 풀이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은 과감한 투자입니다. 마치 일하다가 우연하게 보물을 찾는 농부와 애써 돌아다니며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이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투자하지 않았다면 보물과 좋은 진주는 남의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늘나라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있다 혹은 저기에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가 보인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필요치 않습니다. 공동체에 모든 것을 투자하라는 것은 초대교회의 모습대로 모든 것을 내 놓아 공동자산으로 살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자비로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런 실천은 하느님 체험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기쁨이 되시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의 의미를 알아들어야 가능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대~박 사건"이 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입으로만 믿음을 고백한다면 그 신앙의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바치는 행위는 재산을 바쳐 하늘나라를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교회는 구원을 팔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에 이르는 길을 가르칩니다. 일상생활 안에서 자비를 실천한다면, 이웃과 더불어 기쁘게 살아감을 체험할 수 있다면, 해서 하느님의 자비와 그리스도의 평화를 살아갈 수 있다면, '가진 것을 모두 팔아' 투자하는 대박사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앙 안에서 "대~박!!"하고 감탄하는 우리였으면 합니다.
– 김 두진(바오로)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