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놓으신 아버지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놓으신 아버지

 

 

 

참새구이 드셔보셨습니까? 요즈음 아이들에게 주면 기겁을 하고 도망치겠지만,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새총을 만들어 참새를 잡아 구어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내 기억으로 아주 고소하고 맛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참새구이를 술안주로 파는 포장마차도 많이 있었는데 요즈음은 참새를 술안주로 파는 곳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지금 먹으라 하면 못 먹을 것 같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이었다고 오늘 복음이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유대인들도 참새를 먹었던 모양입니다.

 

오늘은 연중 12 주일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기념하며 민족들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며 남북통일을 위한 기원미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미국 주교회의 지침에 따라 연중 12 주일을 지냅니다. 북한의 핵문제와 심심치 않게 터져 나오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 그리고 미국과 북한의 갈등, 어수선한 고국의 정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남과 북으로 갈린 우리 민족이 화해하고 일치하기를 바라는 기도를 정성된 마음으로 바치도록 합시다.

 

“너희들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26) 예수님은 두려움에서 벗어나시라 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떨쳐버리라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고립되어 있다고 느낄 때 두려워집니다. 혼자 있다는 느낌은 늘 두렵습니다. 외로움을 넘어 두려움이 찾아오는 이유는 우리는 혼자서 살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없애려면 더불어 살아가야 할 텐데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권력과 힘을 사용하고, 지위나 재물로 두려움을 감추니 세상이 혼잡해집니다. 두려움 때문에 화를 내고, 남에게 냉소적이며, 용기가 아닌 만용을 부리게 되니, 스스로를 가두어 자폐의 삶을 살게 됩니다. 결국 외로움은 두려움으로 또 두려움은 자기 폐쇄로 치달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합니다. 또 다른 이유로 두려움은 미래에 대한 지나친 걱정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어쩌지? 혹시 이렇게 되면 어쩌지? 하는 지나친 걱정은 사람들을 두려움으로 몰아갑니다. 그런데 사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가진 두려움은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방해만 될 뿐입니다. 그전에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본 글귀가 생각납니다. "사람이 걱정하는 일들 중 80 퍼센트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너무 자주 또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지나치게 걱정하고 살지는 않나요?

 

이어서 나오는 말씀은 세상에 비밀이 없듯 지금 숨겨진 일이 장차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속담 같은 말씀이며 어록에 수록된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뜻은 문맥상 27절과 연계해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27) 즉, 예수님은 아직도 기쁜 소식을 접하지 못한 이 세대 사람들을 우리에게 맡겨 주시며 그들 안에 당신 나라를 펴나가라 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에게서 은밀하게 익히게 되는 것을 나중에 공공연하게 두려움 없이 선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은밀한 배움은 그저 예수님의 말씀 뿐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사랑의 행위들을 보고 배워 그대로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삶에는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고, 박해가 뒤 따를 것이니 그렇게 되더라고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30) 하느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돌보시며 아끼시는데 두려움을 가질 이유가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이르신 말씀이라면 단 한 마디 말씀이라도 놓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떳떳이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10,27). 세상에 살 때 비록 가난에 쪼들리고 비천한 신분 속에 살면서도 하느님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할 것이며, 하느님 이름 때문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갖은 모욕과 수모를 받을지라도 이를 기쁘게 감수해야 합니다. (10,22;5,11). 여러 모양의 고통과 시련 앞에서도 하느님께 향하는 열정으로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을 용감히 증언해 보일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10,39).

 

이제 예수님은 마지막 날 심판 때 당신 아버지 앞에서 또 만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를 뽑아 당신이 잘 아는 벗들이라 부르시며 영원한 축복의 나라로 안내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10,32).

 

그런데 우리의 사정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의 개인 사정만을 앞세우고 일단 눈에 보이는 것에 욕심이 가 스스로를 속일 뿐 아니라 어떤 때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까지 감춤으로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 예사로 하느님의 이름을 외면하고 살기도 합니다. 교회에서는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결심 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자신의 현세적 욕심을 내세워 마음을 고쳐먹고 생활을 바꾸는 회개는 뒤로 미룬 채 하루를 또 허둥거리며 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10,33).

 

오늘 복음 통해서 주님을 우리게 촉구하십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한 일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를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그러나 그것이 비록 어렵고 두려운 일일 수도 있으나 오히려 참 기쁨을 사는 것이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됨을 기억하라 하십니다.

 

쉽게 잡히고 또 팔려나가는 참새 보다 우리가 훨씬 중요하다고 아니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사랑받고 사는지, 사랑 받고 사는 우리가 어떻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복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놓으신 아버지, 참 기쁨의 삶으로 초대하시는 그분의 목소리가 되어야 함은 우리 신앙인으로서 가져야 할 본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 김 두진(바오로)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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