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회, 고백, 화해!
오래 전 제가 어릴 적에 우리 동네에는 목욕탕이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아버님이 "애야 목욕가자"하고 말씀하실 때는 뭔가 특별한 날이 가까워 왔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지금이야 매일 샤워를 하지 못하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제가 어릴 적만 해도 목욕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따뜻한 물이 많지 않을 때여서 한 번 목욕탕에 가면 몇 시간을 있다가 나오는 통에 어린 시절 제일 가기 싫었던 곳 중 하나가 목욕탕 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대림 2주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 동안 교회는 신자들이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기 위해 화해의 성사를 통해 자신과 화해하고 이웃과 화해하며 하느님과 화해하기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고백성사는 무엇입니까? 고백성사실이 그저 때 되면 가게 되는 목욕탕 같은 곳일까요? 영혼의 때를 벗기는 것이 성사일까요?
교회는 이 성사를 참회의 성사(The Sacrament of Reconcilia tion)라 부르고 있습니다. (참조: 교회헌장, 11항; 교회법, 959조; 가톨릭교리서, 1421항). 참회(Penance)는 “하느님께 돌아오고, 회개하는 것이며, 우리가 지은 악행을 혐오하고 악에서 돌아서서 죄를 짓지 않는 것” (가톨릭교리서, 1431항)을 말합니다. 즉 참회는 통회하는 마음으로 지은 죄를 아파하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성사를 받기 전에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 양심성찰’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양심성찰 대신, 얼른 죄 하나 만들어 해 치우듯 성사를 보시는 분들이 계시는 듯보입니다. 제일 만들기 쉬운 죄가 주일 미사에 빠지는 것인데, "주일 미사 몇 번 빠졌습니다."며 자 랑스럽게(?) 고백하고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 운운 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판공 때가 되었으니 성사를 보긴 봐야 되겠는데, 이런 저런 구차한 이야기를 본당 신부에게 늘어놓자니 그렇고, 주일 미사 한번 빠지고 그것 고백한 다음에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 안에 모두 포함시키면 하느님이 알아서 용서해 주시겠지 하는 심보라면 진정한 화해는 아닐 겁니다.
성사는 먼저 양심성찰을 충분히 한 뒤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통회) 고백하는 형식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통회는 고 백(Confession)을 통해 하느님과 교회 앞에 그 죄들을 내놓게 되는 것입니다. 곧 참회를 하는 이는 고백을 통해 “자기가 지은 죄를 직시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가톨릭 교리서, 1455항) 것입니다. 그러니 고백을 할 때 진실한 양심성찰도 없고 간절한 통회없이 하는 고백이라면 무슨 의미일까 싶습니다.
"신부님 사는 게 죄지요. 신부님이 알아서 용서해 주세요." 할머니들이 주로 하시는 고백인데 차라리 귀엽다고나 하겠지만,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와, 제가 차마 부끄러워 말 못하는 죄까지……." 이건 좀 심하다 싶습니다. 어떤 분은 대 놓고 따지듯 말합니다. “신부님 제가 고백해야 하느님께서 아시는 것도 아니 잖아요. 다 아실 텐데, 뭐……. 그냥 착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러나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잘못도 고백함으로 “양심을 기르고, 나쁜 성향과 싸우며, 그리스도를 통해 치유 받고, 성령의 생명 안에서 성장”(가톨릭교회교리서, 1458항)할 수 있으므로, 교회는 이러한 잘못도 고백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은 약한 존재들입니다. 해서 그 약함을 통해 하느님 앞에 서면 내가 얼마나 하느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늘 반복 되어지는 죄라는 것도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이 늘 반복되어지는 일상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참회자는 통회와 고백을 통해 하느님의 용서를 받고,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Reconciliation)하게 됩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코린 5,20)라는 바오로 사도의 권고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마태 5,24)하신 예수님의 당부는 이 성사를 통해 실현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 의미, 즉 통회, 고백, 화해의 의미가 바로 고백성사 안에 녹아져 있습니다. 비록 라틴어나 영어에는 없는 단어이지만, 고해(告: 알릴 고, 解: 풀 해)는 ‘죄의 고백’의 의미뿐 아니라 하느님의 용서를 통한 ‘화해’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고해성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따지시거나, 죄와 잘못을 꾸짖고 벌하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이 성사를 통해 우리 각자가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과 이웃들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고해성사는 ‘우리 영혼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선물’이 됩니다.
대림 2주의 복음에서도 요한의 입을 빌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를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하고 외칩니다. 오시는 분을 기다리며 큰일을 앞둔 사람처럼 우리 모두가 정갈한 마음과 몸으로 그분을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성사를 통해 회개하고, 참회와 용서 그리고 화해를 통해 하느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으면 합니다.
– 김두진 바오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