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세례축일에
지금은 스마트 폰이라고 하는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더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편리함을 넘어 신기할 정도로 기가 막힌 앱(App- Application의 준말)들이 발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카톡'이니, '유튜브' 정도는 남녀노소 모두가 하는 편리한 앱이며 일상 중에서도 쉽게 쓰여지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앱을 다운로드 받아 잘 사용하면 편리한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스마트 폰에서 받는 다운로드는 유로와 무료로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자녀가 된 우리 안에 무제한적으로 다운로드 받아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전액 무료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다른 말로 표현 한다면 은총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하느님의 은총은 무료 다운로드입니다. 그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눈에 참으로 놀랍게만 보입니다. 오늘 복음을 읽어보면 우리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행동하시며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증언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마태오복음에서는 이것에 대해서 더욱 실감나게 표현하는데, “제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께서 제게 세례를 받으십니까?” 라는 요한의 질문에 예수님은 간단히 대답하십니다. “지금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그래야만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진다.” 하느님을 세례 줄 수 있는 인간, 다시 한 번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위치를 하느님과 동등하게 올려놓으셨습니다. 이제 종이 아닌 벗으로, 아니 우리의 어버이로써 상하의 관계가 아닌 하느님의 본성을 나누시어, 우리가 당신의 자녀로 태어났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십니다.
내가 미국에 산지도 어언 25년이 넘었습니다. 내가 이곳에서 사는 동안 하느님 경험한 것은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내가 가장 약할 때 나는 가장 강하게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 안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내가 커지면 커 질수록 하느님은 작아지고 내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하느님 께서는 커지시는 것인 것을 우리는 굳이 외면하고 살았구나 싶습니다. 이런 이치는 가정생활이라도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이 커지도록 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제 1 독서에서 말하는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의 감옥에 묶여있는 내 자신을 풀어주는 것일 것이고 내 편함만을 고집하는 우리 자신의 캄캄한 영창 속에 갇혀있는 우리 자신을 풀어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답답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이겠지요. (차라리 이것조차 생각하지 않으면 더 편하겠지만.)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다운로드 받을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앱이 우리게 필요한지 알아야 그 앱을 다운받을 것이고 그 좋은 앱을 사용하여 내가 커지면 커질수록 배우자와 자녀들은 작아지고 내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배우자와 자녀들은 커진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저히 인간적인 생각으로만 볼 때는 분명 손해 보는 것이고 권위가 실추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람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하느님 의 시선으로는 그런 자기 낮춤이 은총의 앱을 upgrade 시키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는 내가 커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작아짐으로 풍요로운 세상을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세례 축일인 오늘 우리도 각자의 세례를 기억하면서 하느님께 청원 드려야겠습니다. 내가 무엇을 보지 못하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알게 될 때 우리는 변하게 되고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다운 받아 업그레이드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애원해야 합니다. 내 편함만을 고집하는 캄캄한 영창에서 풀려나게 되기를, 우리는 성체를 모시면서 하느님께 청원해야 합니다.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의 감옥에 묶여있는 우리 자신을 구해 달라고 말입니다.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야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진다."는 그분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지혜를 청해야 합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이 작아짐으로 우리 이웃이 커지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실 안에서 이웃 안에 머물러 계신 그분이 커지심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각자의 세례의 감격을 되살려 세례 때 하느님께 드렸던 그 약속들을 점검하며 내가 작아질수록 이웃이 커지고 내가 커질수록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은 작아짐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 김두진 바오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