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주일 대림 3주일

 

 

 

 

 

핑크주일 대림 3주일

 

 

내게 핑크색 바지가 하나 있습니다. 한국의 친구가 골프 칠 때 입으라고 하나 보내 준 것이 있는데 어쩌다 입으면 말들이 많은 것을 보아 분명 핑크색은 남성의 색이 아니지 싶습니다. 대림 3주일은 핑크 주일입니다. 우리 성당에는 없지만 사제도 이날 특별히 핑크색 제의를 입고 미사를 지내도록 합니다. 일 년에 한 번 입는 핑크빛 제의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한번 입어보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왜 교회가 유독 여성들이 좋아하는 핑크빛으로 장식을 하며 대림 3주일을 맞이할까 생각하다가 모성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돌보고, 보살피며, 착하고 협동적인 모습이 모성애라 생각하니 여성의 색깔인 핑크로 치장한 교회가 이런 모성애를 살아가자고 다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교회에서는 아니지만, 한국천주교회는 대림 3주일을 자선 주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성애를 가득 담은 교회가 되자는 것이 아닐까 어쭙지않은 생각을 해 봅니다.

 

핑크빛 때문일까요?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기다리면서 콧노래도 나오고 마음도 푸근해지는 따뜻한 마음입니다. 죄 많은 우리들을 구원하실 구세주께서 이 땅에 오시는 성탄절이 가까이 왔음을 기억하면서 우리 모두가 요한 세례자처럼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자신을 낮추면서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교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권고하면서 기쁜 소식을' 선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가져봅니다.

 

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거리인 샹젤리제에서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많은 이들이 데모를 하려 모였다가 폭도로 변해 상점을 약탈하는 폭력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파리에의 같은 장소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나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폭력과 테러가 일어나는 이 세상에 주님이 오심은 꼭 필요한 은총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루카 3,10)하고 물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갈수록 혼탁해져 가는 세상에서 '그러면 저희가 그리스도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요한 세례자에게 자문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징글벨을 노래하며 흥겨워하고 있을 때 선물을 준비 못하는 어떤 이웃에겐 징글벨의 노래가 징그럽게 들릴 수도 있고, 가난한 이웃들은 지금도 추위에 떨며 울고 있는 이웃이 있음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못하고 우리를 위해서만 살아간다면,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고 맞이하는 이들의 모습일까요?

 

 

모르쇠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 할 수 있을까요? 이 시대에 어떻게 말씀을 증언하고, 어떻게 진리이신 분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일지 먼저 생각해 보지 않고서는 성탄시기는 그저 흥청거리는 상업적 성탄에 묻어 지나가는 세상의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지 싶습니다.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지 못하다가 혹시 "독사의 자식들아"(루카 3,7)하며 요한 세례자에게 혼쭐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저 말로만 "주님, 주님"하고 외치면서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우리는 요한 세례자가 외친 "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리실 것이다"라는 따가운 질책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옷 두 벌 가진 사람이라면 그리 넉넉한 사람은 아닐 겁니다. 나눔은 가진 것이 많아서 남는 것을 줘버리는 것이 아니라 빠듯하면서도 나보다 못한 이들에게 내어 줄줄 아는 넉넉함입니다. 먹을 것이 넘쳐나 쓰레기 봉투에 버리기 전에 이웃에게 나누지 못하는 우리의 궁핍한 마음을 먼저 버려야겠습니다. 등쳐먹지 말고 (속이지 말고) 정한대로만 받고, 힘 있다고 으스대며 거들먹거리지 않으며 만족하는 법을 배우라 외치는 광야의 소리를 우리는 어떻게 들어야 합니까? 가진 자들이 판치기에 없는 이들이 점점 내몰리는 이 땅에, 하느님이시며 말씀이신 주님께서 오십니다. 그분의 백성이면서 자녀인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그분을 맞아들여야 할까, 또 가난한 이웃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권고하면서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할까 생각해 보지 않는다면 핑크의 따뜻함도 아름다움도 그저 치장에 불과할 것입니다.

 

야고보 서간의 저자가 부드럽고 낮은 톤이지만 힘 있게 들려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사실 누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울에 자기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자신을 비추어 보고서 물러가면, 어떻게 생겼었는지 곧 잊어버립니다."(야고 1,22-24).

 

그렇습니다. 말씀이신 분이 곧 우리 가운데 오시니,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는 그 말씀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입으로 고백하고 삶으로 증거 하는 참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이시고 '기쁜 소식'이시며 세상을 구원해주실 분께 이 자비의 주일에, 아니 이 핑크빛 주일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여쭙고 살아야 합니다.

 

 

– 김두진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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