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sgiving
과 Adventus (감사와 도착)
우리는 지난 목요일 추수감사절을 보내며 터키와 감자 그리고 크랜베리 소스를 먹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Thanksgiving을 지내면서 그 역사적 사실을 모르시는 것 같아
역사적 사실과 함께 그 의미를 되짚어 보고자 합니다.
1527년 영국의 헨리 8세의 이혼 문제로 시작된 로마 교황과의 갈등은 1531년 2월 11일 영국 성직자들이 헨리 8세를 잉글랜드 교회에서의 왕위 지상권을 인정하는 결의를
함으로써 로마 가톨릭과는 결별의 길을 걷게 됩니다. 따라서 교황 클레멘스 7세가 헨리 8세를 파문하였고 헨리 8세는 1533년 앤 볼린과 재혼을 하게 됩 니다.
1534년 왕위지상령을 공포하여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고, ‘영국 성공회’를 국교로 삼게 됩니다. 로만 가톨릭과 결별 이후 종교개혁 운동이 영국으로 들어와
탄력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성상 파괴, 순례의 폐지, 성인숭배 폐지등이 실시됩니다. 그러나 영국 성공회는 개신교가 아니었으며, 헨리 8세가 신봉하는 믿음도 가톨릭 그
자체였습니다. 영국 성공회가 공식적으로 로마 교회에서 분리가 된 것은 1559년입니다. 잉글랜드 의회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믿음의 옹호자“로 인식하여 왕위지상령을
채택하고, 반대로 개신교적인 법을 폐지합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선택한 길은 “중도“라고 불리는 것으로, 잉글랜드 안에 존재하는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교회가 서로를
부정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길을 택한 현실적인 정책이었습니다. 또한 여왕은 1563년 성직자 회의에서《영국 성공회 39개조 신앙고백》을 제정, 영국 성공회의
국내화를 강화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영국의 청교도와 영국 성공회의 대립이 심화됩니다. 1603년 즉위한 제임스 1세는 영국 성공회에 강력한 지지를 보냈고, 또한 왕권신수설
을 기리기 위해 국왕의 절대성을 주장했기 때문에, 개신교 여러 교파들로부터 반감을 사게 됩니다. 결국 1620년 청교도인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는 결국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향하게 됩니다.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순례자의 아버지)는 1620년 미 국으로 건너가 플리머스
식민지에 초기에 정착한 영국의 청교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청교도들은 영국의 종교 개혁이 불완전한 개혁이었다고 평가하여, 영국 성공회의 정부 중심의 성향과 로마
가톨릭교회의 잔재를 철폐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들은 도덕적인 순수성을 추구하여 낭비와 사치를 배격하고, 근면을 강조하였으므로 영국의 중산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신학적으로는 인위적 권위와 전통을 인정하지 않고, 성경에 철저하고자 한 전통 복음주의인 성서주의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1620년 9월 16일 존 카버, 윌리엄 브래드퍼드를 비롯한 영국의 청교도 102명이 잉글랜드 남서부 플리머스에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
(북아메리카)의 플리머스로 떠나게 됩니다. 선상의 질병으로 시달리면서 66일간의 어려운 항해를 거쳐, 케이프코드 끝의 낚시 바늘 모양의 프로빈스 타운
(지금의 메사추세스 주의 Provincetown) 항구에 닻을 내립니다.
원래의 목적지는 허드슨 강 하구의 현재 뉴욕시 인근으로 당시 영국의 정착지였던 현재 버지니아주의 북쪽 끝의 땅이었지만, 메이플라워호가 항로를 이탈하면서 도착이
지연되는 바람에 결국 1620년 12월 지금의 메사추세스(Massachusetts) 주 플리머스(Plymouth)로 이주해 정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의 반수 이상이 추위와 괴혈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이들은 어려운 악 조건 속에서 인디언들로부터 배운 경작법으로 봄에 옥수수를 심어 가을에 수확을 하게 됩니다. 마침내 그 다음 해인 1621년에 3일 동안
추수를 감사하는 큰 축제를 벌입니다. 이때 청교도들은 자신들에게 농사를 가르쳐 자신들이 굶어죽지 않도록 도와준 인디언들을 초대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추수한 곡식, 과일
과 야생 칠면조와 사슴을 잡아 축제를 벌입니다. 이것이 미국에서 시작된 최초의 추수감사절이 됩니다.
그 후 1623년에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추수감사절을 공식 명절로 선포하여 추수감사절은 매사추세츠주와 코네티컷주의 연례적인 명절이 되었으며, 이 관습은 서서히 다른
지역들로 퍼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1789년에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지정하게 되는데, 3대 제퍼슨 대통령이 추수 감사절은
잉글랜드 왕의 관습이라는 이유로 국경일에서 제외시켜 이후엔 몇 개의 주에서만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됩니다. 1941년 12월 26일 프랭클린.D.루스벨트 대 통령이 11월의
4번째 목요일로 추수감사절의 날을 정해 국경일로 선포합니다.
이처럼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그리스도교적인 발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박해를 피해 신대륙을 찾아나선 이들이 결국 신세계에
발을 딛였고, 정착할 수 있도록 배려를 받은
사람들이 베푸는 감사의 잔치라는 점에서 이민와 배려를
받고 살며 정착한 우리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오늘 대림 1주일을 맞습니다. 대림은 ‘도착‘ 을 뜻하는 라틴어 Adventus (앗벤투스)에서 온 말입니다. 영어로는 Advent 라고 합니다. 대림의 말 뜻처럼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도착‘ 을 기다리는 신앙인들은 이 기간 동안 회개와 속죄로 시간을 보내면서 구원을 준비합니다. 우리가 Thanksgiving을 지내고 대림을 맞이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감사하고 사는지 그리고 그 구원의 신비에 얼마나 참여하며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실천하고 사는지 되돌아보는 기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게 베푸신 사랑을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감사를 드려야 하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랑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하겠습니까?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 예식을 행하라“시던 예수님의
말씀을 성찬 안에서 늘 기억하는 것은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 머물고, 그 사랑이 이웃을 향해 전파되도록 우리가 행동해야 함을 선포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감사와 회개 그리고 감사와 속죄는 우리가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기간 동안 품어야 할 화두가 아닐까 싶습니다.
– Fr. 김 두진(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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