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1월 3일 연중 제 31 주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11 3일 연중 제 31 주일

오래 전 노래에서 나오는 표현 중에 우스운 표현이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은 그토록 하기 어려운 단어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너무 쉬이 사랑을 말한다. 요즈음 젊은이들도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쓴다고 하지만, 미국의 문화를 따라나서긴 쉽지 않을 듯하다. 미국 사람들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표현하나 보다. 사랑한다는 것과 좋아한다는 것은 비슷한 뜻이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분명 다른데 사랑에 금... 문화가 미국 문화인가 보다. (랑에 진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며 괴상한 논리를 내세우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성경 말씀을 일깨워 주며 물리치시니 이번에는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떠보듯이 질문한다. 예수님께서는하느님 사랑이웃 사랑의 근본 계명을 말씀하시고, 여기에 대해 율법학자는훌륭하십니다. 스승님.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보다 낫다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너는 하느님 나라에 멀리 있지 않다하신다.

사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은 시나이 산에서 모세가 받은 계명을 확대 해석하여 613개의 율법 조문을 만들었다. 그 중에서 248 개 조항은 명령이고 365개 조항은 금령이다. 그래서 항상 613개의 율법 조문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가 하는 것이 늘 논쟁거리였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 한 사람 이 예수님께 와서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한가 묻는다.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 하신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신명기와 민수기에 나오는 말씀으로, 이 단 한 구절이 유대교 교리의 진수이다. 이 구절을쉐마라고 불렀다.

 

쉐마는 회당에서 예배를 시작할 때 항상 사용하는 말로서 유대교 유일신 신앙의 기초였다. 예수님이 이것을 첫째 계명으로 인용했을 때에, 믿음 깊은 유대인들은 동의했을 것이다. 한 분이신 하느님은 우리 신앙에도 매우 중요하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만 사랑하는 것이다. 세속의 부귀영화나 재물을 사랑한다면 하느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하시며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로 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양쪽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신 것은 사랑은 오직 하나의 대상만을 향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양다리 걸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예수님은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레위기 19장의 말씀을 인용하신다. 레위기에서 말하는 이웃은 이방인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오로지 유대인들끼리 만 이웃이 될 수 있었다. 그러면 우리에게 누가 이웃인가? 내가 아닌 당신은 모두 나의 이웃이다. 내가 내 몸을 사랑하고 내 마음을 사랑하고 내 생각을 사랑하고 내 목숨을 사랑하고 내 정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또 다른 나인 이웃을 똑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하느님과 이웃은 서로 다른 두개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대상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구체적 방법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두 계명을 하나로, 즉 하느님을 사랑하고 인간들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가는 하느님의 계명이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유일한 증명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에서 증명된다.

 

이웃사랑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나타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없다. 만약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이웃을 모른다고 하면 말로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이웃사랑과 하느님 사랑은 그래서 하나다. 목숨 바쳐 사랑 하는 , 죽도록 사랑하는 . 어찌 보면 입으로는 하기 쉬운 말이지만, 행동으로는 어려운 이유는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하느님을 사랑하자. 그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으로 나타날 비로소 사랑은 우리 안에서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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