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대림 제 1 주일
한국에 사는 조카가 딸을 낳았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우리 성당의 몇 젊은 부부들도 아이를 낳았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새 생명을 접하는 것은 경이롭고, 아름답고, 정말 기쁘다. 수고했다고, 축하의 인사를 보내며 그들과 함께 기뻐했다. 새롭게 시작된 생명을 만난다는 것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생각해 보면 아기가 태중에서의 마지막이 바깥 상에서의 첫날이다. 그러니 우리의 마지막이 우리의 또 다른 새로움 이란 사실이 우리를 설레게 한다.
대림절을 시작할 때 성당 중앙에 보이는 것은 대림환이다. 여기에는 초가 4개 꽂혀 있는데 이는 4주간을 뜻한다. 본래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세주 오심을 기다린 세월이 4 천년이라 생각했다. 그 4 천년을 4주간으로 상징화해서 네 개의 초에 불을 밝히는 것이다. 또한 4개의 초는 예수님께서 동서남북 온 세상의 구세주이심을 의미한다. 그리고 둥근 원형은 바로 온 우주를 상징한다. 바탕을 이루는 녹색은 생명의 푸름을 나타내고 초의 색깔도 어두운 자색으로 시작해서 점점 밝은 색의 초에 불을 켠다. 그것은 세상의 빛이신 주님께서 어둠을 비추기 위해 가까이 다가오시는 기쁨을 표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도 맑고 또 밝아져야 한다. 맑고 밝아진다는 것은 우리의 허물을 벗는 것이며, 죄와 악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오늘 제의 색깔과 제대 초의 색깔이 자색인데 이 색깔은 회개와 보속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테살3,13)라고 권고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으로, 하느님의 숨을 받은 사람이요, 특별히 세례성사를 통해서 거룩한 사람으로 축성된 사람이다. 일상의 삶에 지쳐 그 거룩함을 잃어버린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며 거룩함을 다시 찾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1독서에서 “보라, 그날이 온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에게 한 약속을 이루어 주겠다.”(33,14)고 선언한다. 하느님께서는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저버리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부르시고 꼭 약속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지”(1테살4,1) 깊이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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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끝부분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 하여라”고 하신다. 그날은 신앙인에게는 완성의 날이지만 세상에는 마지막 날이다. 태중의 아기가 세상으로 나오는 것은 태중에서의 마지막이지만, 세상에서의 첫 출발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니 우리의 마지막은 새로운 시작일 수밖에 없다. 그날은 허리를 펴고 머리를 쳐들 사람과 공포에 휩싸이고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사람이 드러나는 날이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다는 것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것을 왜 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주님의 마음에 들도록 하는 것이 바로 깨어 있는 것이다.
‘적당이 ’라는 말이 우리 삶 가운데 참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적당하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모습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주님의 일에는 적당이가 없다. 주님의 일은 사랑이기에 적당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적당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과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하는 것이어야 한다. 결국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적당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의 사랑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완성은 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주님께서는 세상의 종말을 말씀하시고 이를 위한 준비로 한 가지를 제시하신다. 바로 “늘 깨어 기도하여라.”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주님과 가까워 질 수 있고, 주님의 뜻을 알게 된다. 결국 알게 된 주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얼마나 기도하고 있을까? 혹시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기도할 생각이 없다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고 있지 않는가?
세상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것은 기쁜 일이고 축하할 일이다. 그 새로움이 우리의 희망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도 우리게 오실 예수님을 가슴에 받아 안을 수 있도록 우리의 거룩함을 되찾아 새로움을 받아 안아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처럼 서로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