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들어라!

들어라!

 

자동차를
운전할

횡단보도를
천천히
지나가는
사람이

답답합니다.
반대로
내가
횡단보도를
지나려고


빨리
지나가는
자동차가
밉습니다.
비가
많이

때는


비가
빨리
그쳤으면
좋겠
다고
생각하다가,
날씨가
덥고
습하면
비나
내려
시원해졌으면

비를
바라곤
합니다.
사람이라면
이렇게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마음에서


자유로울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것이
굳이
사하다고
하긴
뭣해도
약한
존재인
사람들인지라
그럴
수도
있지
싶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만족하고
남이
만족할

있는
일이
마나
될까요?
내가
만족하면서
남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손이
안으로
굽듯
자신의
만족을

찾기
때문이지요.
세상을
산다는 것이
이웃에게 좋은
평을

위해
살아야
하는


삶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이웃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좋은
평가
때문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아닐까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
나만을
위한
삶은


세상
너무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너무
안으로
굽어
오그라들지는
말아야겠기에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지켜봤던
율법을
강조하던
바리사이들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음식을
먹었다는
것이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으면
병에
걸릴
걱정스러워
하던
트집이
아니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어겼던 제자들에게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그들의 스승인 예수님께


시시비비를 따져 묻습니다. 조상들의 전통도 르지 못하는 제자들의 스승이 과연 올바른 스승이고 훌륭한 스승이겠느냐 질시의 눈으로 말입니다.

 

처음에도 말씀드렸듯, 세상에는 여러 가지의 모습이 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의 마음과 자동차를 운전할 때의 마음이 틀리, 흐린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맑은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 기호가 서로 다르며,


분이 울적할 위로를 바라기도 하고 기분이 좋을 신이나기도 하는 우리의 삶에 변화무쌍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이런 변화무쌍한 처지와 기분으 위주의


삶을 살게 된다면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어 어쩔 없다고 할지는 모르나 너무 굽어 오그라든 팔로 세상을 사는 것은 아닐지 걱정됩니다. 그래서 세상을 사는 것이 쉽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맘에 드는 사람들과만 어울리면 되는데, 더불어 살아 하는 세상인지라 복잡해지고 시끄러워지는 모양입니다.

 

사람들의 행동은 마음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나도 모르게   마음 표출이 되어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것도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안에서
부터
시작한다는
말씀이지요.
무엇을
품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것입니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제자들의
모습을
면서
어떻게
먹는가를
보지
말고

먹는가를
봐야
하는데
먹는
의미는
잊은

먹는
방법만을
따지는
바리사이들의
오그라든
마음에
분개하십니다.


남을
비난하는데
열을
올리지
말고
올바
생각에서
올바른
행동이나오니
마음을
고쳐먹으라고
하십니다.
남에게
보이는
행동보다
어떤
마음으로
임하는가가

요하다고


말씀하시며
입술로는
하느님을
공경하지만
마음은

떠나
있음에
가슴
아파하십니다.
잘못된
행동은
고칠

지만,
마음이
오그라들면
속에
있는
진실은
보지
못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들만
찾게
된다고
하십니다.

 

우리
삶에는
지켜야

많은
법들이
있습니다.
남들에게는
지켜

것이라고
말하긴
쉬워도
내가
지켜내기엔
어려운
법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신명기는


이렇게
말합니.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들어라.”
듣는다는
말씀은
귀로
듣는것이
아니라
알아
들으라는
말씀이며,
알아들으라는


말씀은
실천하라는
말씀입니
.
그런데

실천이

알아듣지
못하고
하는
실천이면
귀로
듣는
것이
되고

알아들어
실천하게
되면
생명의
법이
다는
말씀입니다.



조상들의
관습이

생겼는지를
알게
되면
손을
씻고,

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인데, 그들
관습에
매여
알아듣지
못합니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귀로
듣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2독서에서 사도 야고보는 명백하게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소리를 듣는것이 아니라 명을 뜻합니다. 오늘의 복음말씀 사람 밖에서 안으로 들어 그를 더럽힐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말씀을 귀로만 들으면 음식 잘못 먹고 탈이 나서 토하는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떨어질 죄인들일 겁니다.

 

들어라!” 이번 주일의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듣는 것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들어야 하며 열린 마음에서 율법의 의미를 깨달을


있다는 예수님의 르침입니다. 세상을 사는 것이 간단하지 않은 이유가 더불어 아야 하는 다양함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더불어 산다함은 팔이 안으로만 굽혀지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도 굽혀질 있음 알아 어깨동무하며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의 마음에 이렇게 외칩니다.

  들어라!”     

                                                                                                                                      – Fr. 김 두진(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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