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배고플
때의 빵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에 잘 구운 김 한 장을 얹어 먹으면 꿀맛이지요. 잡곡밥도 오래 씹으면 고소하고 달콤하게 맛있고요, 또 보리밥은 어떻습니까? 꽁보리밥에 호박 잎
삶은 것 한 장 올려 놓고 강된장과 함께 먹는 맛도 일품이지요. 타버린 밥, 누룽지는 어떻습니까? 구수한 맛 그리고 뜨겁게 끓인 숭늉 생각하면 더운 날씨에도 군침이 돕니다.
해서 빵 먹을래, 밥 먹을래? 라고 묻는 이들에겐 저의 대답은 늘 똑같습니다. “밥!” 미국에 살면서 빵 보다는 밥을 더 좋아하는 나지만, 가끔씩 맛있는 빵도 있습니다.
그 맛있는 빵은 배가 고플 때 먹는 빵입니다.
“어리석은 이는 누구나 이리로 들어와라!” 지각없는 이에게 지혜가 말한다. “너희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 어리석음을 버리고 살아라. 예지의 길을 걸어라.”
오늘 제 1독서의 말씀입니다. 이어서 제 2독서에서 우리게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그러니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서 방탕이 나옵니다.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해지십시오.”
지난 3주 동안 또 앞으로 3주 동안 총 6주에 걸쳐 복음에서는 생명의 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성찬례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자 함이지요. 오늘 복음에서도 생명의 빵에 대해
말합니다. “나는 살아있는 빵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이다.” 참 어려운 말입니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난 3 주 동안에도 성찬례의
의미에 대해 글을 썼고, 앞으로 3주 동안 총 6주 동안 성찬례의 의미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합니다. 그만큼 성찬례의 의미는 중요하고 또 알아듣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아주쉽게 이해하던 한 신자분이 계셨습니다. 그전에 전주에 한 여자 신자분이 성체를 받아 모셨는데 그 빵이 피가 뚝뚝 흐르는 살로 변했다는 끔찍한
말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쉽게 믿을 수 있습니까만 이런 것이 성찬과 성체의 의미는 아닙니다. 물론 이 분은 한국교회에서 더 이상 인정 받지 못하고 이단으로
취급되었지만, 만약 우리가 영성체 할 때 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성체를 받아 모신다면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모두 식인종으로 되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성체를 영하는
것은 사람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닙니다.
부부는 한 솥밥을 먹으면서 서로 닮아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례를 받은 이후 오랫동안 성체를 먹고 성혈을 마시면서 얼마나 그분을 닮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님이 사셨던 삶을
배워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의 길인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슬프기만 합니다.
그분의 삶을 닮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분을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은 미사성제 안에서 이렇게 표현됩니다. 오늘 우리는 미사중에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평화의 인사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어린
양을 노래하는 동안 사제는 빵을 쪼갤 것입니다. 옛말로 성찬례 혹은 제찬봉령 예식은 주님의 기도로 시작되어 영성체 후 기도까지 이어집니다. 제찬봉령이란 말은 제물을
하느님께 봉헌했다가 다시 받아 모신다는 뜻입니다. 즉 하느님께 봉헌되어진 것을 하느님께서 다시 우리게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본래 큰 빵을 손으로 쪼개어 여러개의
덩어리로 나누는 것은 빵을 먹는 지중해 연안 민족들과 근동 민족들의 생활 풍습으로서, 모든 식사 중에 이루어지는 행위였지만, 미사 안에서의 쪼갬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잘 알듯이 7개의 청원으로 되어있습니다. 앞의 세 개의 청원은 하느님과 관련된 청원이고, 후반부의 네 개의 청원은 이웃과 관련된 청원입니다. 즉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바치는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히 빛나게 살고,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도록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살게 해 주십시오.” 하는 청원입니다. 또한 “이웃과 우리게 빵을 주심과 같이 그 빵이 나 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의 모든 이들에게도 내려진 빵이라는 사실을
알고 양식을 나누어야 하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내게 잘못한 이웃을 용서하고 살게 하시며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하는 청원이 주님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의 청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느님의 능력으로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살겠다는 다짐이기도 한 것이지요.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주님의 기도 내용대로 살 수 있게되면 하느님을 구체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 가도록 아버지 하느님께 청원하는 것입니다. 네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이신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려는
우리의 청원이고 다짐입니다.
이어서 우리는 평화의 인사를 나눕니다. 평화의 인사의 의미는 형제, 자매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서로를 위해 나누겠다는 구체적 약속이기도 합니다.
평화(平和)라는 한자어를 보면, 벼를 뜻하는 화(禾)변에 입을 뜻하는 구(口)가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즉 벼를 먹는 입이 공평 하다는 뜻인데 평화를 이루려면 나누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 됩니다. 아마도 세상이 평화롭지 않은 것은 나눔의 부족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음 주보에 이어집니다)
– Fr. 김 두진(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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