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배고플 때의 빵 (2)

밥과 배고플 때의 빵                   (지난주에서 이어집니다.)

 

지난 주에 평화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주보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그저
나 하나 잘살겠다고 아둥바둥거리며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하느님의 큰 뜻을 품으셨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을 너무 작은 세상으로 내 모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해서 하느님의 자녀답게 큰 세상을 위해 내 자신을 내어놓고 우리


자신을 나누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사랑을 살아가는 우리를 큰 세상 즉 하느님의 나라로 이끌어 줄 것입니 다.  큰 세상 즉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나를 나누겠다는


각오가 선 후 우리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합니다. 이 때 사제는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쪼갭니다. 저는 신자들이 잘 볼수 있도록 성체를 높이 쳐들고 쪼갭니다.


이는
신자 모두가 예수님의 성체가 쪼개어 우리게 나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저의 의도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습니다만, 본래 큰 빵을 손으로 쪼개어 여러개의


덩어리로 나누는 것은 빵을 먹는 지중해 연안
민족들과 근동 민족들의 생활 풍습으로, 모든 식사 중에 이루어지는 행위였지만, 미사 안에서의 쪼갬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성체를 쪼개는 것은 주님의 죽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성체가 예수님의 몸이라 믿는다면 예수님의 몸이 쪼개어진다는 것은 그분의 죽음을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매 미사때마다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 모두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이니 그분께서 부활하셨음 같이 우리도 부활할 것을 믿으며 예수님께서 사셨던 삶을 우리도 살아내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그 나눔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하며 빵이 쪼개어지듯, 우리 자신의 신비적 죽음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 신비적 죽음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준비된 우리가 그분을 받아 모십니 다. 거룩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분을 모셔드려 이제 성찬의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는 성찬례 안에서 이렇게 묻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신앙생활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죽어가는가?
이웃에게 얼마나 자신을 내어주는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서로 반목하고 싸우며 살고 있지
않은가? 이웃과의 싸움은 지지 않겠다고 쳐드는 내 자존심 때문인데 그 알량한 자존심이 진정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가? 과연 무엇이 지혜롭고 무엇이 어리석은 일인가? 살아있다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지지 않겠다고 치켜드는 우리의 자존심이 잠시 우리의 체면은 지켜주겠지만


진정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각오를 하고 나서 우리는 성체를
모십니다. “그리스도의 몸하면아멘으로 응답합니다.


우리가아멘하고
응답하는 것은 성체가 실제적인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믿는 우리의 신앙고백이며 성체의 삶을 살겠다는 우리의 각오입니다.


아멘이라는
뜻은그렇게 되어지리이다라는 희망인
동시에 성체가 그분이심을 믿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그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숨어있습니다. 해서 우리가 성체를 받아 모시기전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하면아멘
이라고 큰 소리로 응답해야 합니다. 우리의 응답
아멘


 “당신을
믿습니다, 그러니 성체의 삶을 살게해 주십시오!” 하고
외치는 매우 중요한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며 살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청원드렸고,
삶을 살기 위해 평화의 인사를 통해 친교와


나눔을 살겠노라고 다짐했으며 예수님의 죽음인 성체의 쪼개짐을 통해서 나를 버리기 위해 자기 죽음의
신비를 실천합니다.

성체를 모시고 지난 주에 들었던 수군거리며 믿지 못하는
마음이 아니라 믿음으로 우리게 오신 주님과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 다.  우리게 오신 그분과 일치를 이루는 시간을


가지며, 우리의 부족함을 그분께 말씀드리고 그분 사랑에 깊이 감사의 마음으로 기도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사제가기도 합시다하는 말씀으로 우리 개인의


기도가 교회 공동체의 기도가 되고 그 교회 공동체의 기도는 영성체 후 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바쳐집니다. 그러므로 성체를 영하여 주님과 일치를


이루고 나서
드리는 우리의 개인 기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개인의 기도가 교회의 기도로 되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쳐지는
우주적 기도가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물으며 반성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은 삶은 어떤 삶일까? 살아있는 살인 성체를 받아 먹고 그분의 명의 피를 마시는 성체와 성혈에 진정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고 미사에 참여하면서 영성체를 안하면 안되니 습관적으로 받아모시는 사람인가? 안에 그분을 모셔드리 합당치 않지만, 그분의


현존이 필요하고 그분의 사랑이 절실해서 그분을 받아 모시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해서 우리의 신앙 생활은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게 쏟아 부으셨던 랑을


기억하며 드리는 감사의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사람은 안에 머무르고, 나도 사람 안에 머무른다.그분 안에 머물기에 솥밥을 먹는 부부 닮아가듯 우리는 주님을 닮아갈


있습니다. 그분의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사람이 되고저 시간을, 재능을, 것을 내어 놓고 목숨마져 내어 놓아 남에 씹혀지며 먹혀지는


존재가 되어집니다.

 

나는 살아있는 생명의  빵입니다. ” 말씀을 기억하고 살아가 결국 우리는 그분의 삶을 살아가게 것이며 우리의 행위 모두는 그분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성사적 삶이


되어지지 않겠 습니까?        



                                     – Fr. 김 두진(바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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