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1 주일 김두진바오로 신부님 강론

2 21일 사순 제 1 주일
복음 묵상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되는 수사님이 수도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다 해서 미국에 먼저
온 선배로 혹시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보러 갔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수도원 도서관에서 샌드위치와
음료수 그리고 재떨이까지 준비해 와 책상 위에서 담배를 피우며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깜짝 놀라
여기서 음식 먹으면 안되고 음료수도 안되며 더더욱 담배는 안 된다고 하니,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표지판을
가리켰다. 그 표지판에는 Food free, Drink free,
Smoke free
라고 써 놓았다. 한국식으로 번역한다면
Food free
는 음식 자유, Smoke free는 흡연 자유라고 번역이 되니 음식 먹으며
담배 피우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참 자유(Freedom)는 무엇일까?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결혼을 하지만, 좋은 남편 혹은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개인적 불편함을
선택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자유롭게 결혼했지만, 결혼에서
얻게 되는 많은 제약들은 행복을 위한 장애가 아니라 꼭 필요한 선택이다. 더 큰 자유를 위해 자유롭지
못한 것들을 감수하며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다. 하느님은 우리를 속박하고 싶어 하시는 분이 아니 신데
왜 자유의 이름으로 하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도 많을까? 오늘 복음 에서처럼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에도
왜 유혹을 받으셨을까? 유혹 없는 세상이 더 자유롭고 더 편한 세상일 텐데 왜 예수님은 굳이 유혹을
받으시 어야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유혹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한다그러나 나는 반대로 유혹이 있는 세상에 살고 싶다. 유혹이 없음은 결국 자유가 없고, 내 선택이 없어지는 갑갑한 세상이
될 뿐이다. Temptation free (유혹에서의 자유는) 유혹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반대로 유혹 안에서 자유로운 선택 이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유혹은 자유로운 선택이다. 참 자유를 위해
나를 비워내는 십자가의 선택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성욕이 없다면 세상에 사람은 존재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성욕이 있어서 다른 사람이
유혹의 대상이 된다는 말로 알아들으면 무리가 따른다. 사람들에게 질투가 없다면 세상의 발전은 그리 빠르지
못했을 것이다. 가지고 싶은 것과 또 얻고 싶은 것이 있기에 오히려 우리는 생산하고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발전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우리게 주시는 것 중 악한 것은 일도 없다. 그것이 성욕이든, 재물 욕이든, 어떤
욕망이든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면 악하지 않다. 단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문제다. 지나친 것은 차라리 모자란 것보다 못하듯 지나친 욕심과 사심이 사람들을 어둠으로 몰고 간다. 같은 이슬을 마시는 젖소와 뱀이지만 젖소는 우유를 만들어 내고 뱀은 독을 만들어 낸다는 말처럼 우리가 무엇을
가슴에 품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소화해 내는지가 더 중요하다.

 

예수님께서 유혹을 받으셨 듯 우리도 유혹에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유혹이 있기에 우리는 더 신앙인처럼 살 수 있다. 유혹은
악의 세력이지만, 그 악은 밖에 있는 무엇이 아니고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우리에게 욕망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무미건조하고 활력이 없는 삶이 될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욕망들이 죄를 짓는 기회가 아니고 선을 행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 우리의 욕심이나 우리의
유혹들은 하느님을 만나는 또 다른 기회가 된다. 이번 사순 시기가 우리에게 참 자유를 알게 하여 주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40일의 여정 안에서 예수님의 고통과 십자가를 알고 그분의 부활을
배워가는 시간이면 좋겠다. 우리 앞에 놓인 유혹 앞에서 하느님을 선택하여 선을 행하는 지혜를 배워가는
시간이면 좋겠다. Temptation Free가 유혹이 없는 것이 아니고 유혹 안에서 자유로운 선택임을
깨달아 하느님의 은총을 만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