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3 주일 김두진바오로 신부님 강론

3 7일 사순 제 3 주일
복음 묵상

오늘 복음은 성전의 정화와 함께 새 성전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열정을 다루고 있다. 즈카르야 예언자는 야훼의 날이 오면만군의 주님의 집 안에 더
이상 장사꾼들이 없을 것이다
”(즈카 14,21)고 예언하였다. 메시아의 때와 성전 정화를 예언한 즈카르야의 예언은 오늘 복음의 근본적인 의미를 제시해준다. 채찍질과 상을 둘러엎으며 장사꾼들을 성전에서 몰아내시는 예수님의 행동은 그가 곧 구약의 성취이며, 우리에게 오시기로 되어 있던 메시아이심을 나타내고 있다.

 

오늘 제 1 독서에는 모세의 십계명이 전달된다. 유다 전통은 대부분의 계명이 명령형으로 되어 있지 않고 미래형 직설법으로 씌어 있다. , “살인하지 말라 (Do not kill)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그대는 살인을 안 할 것이다. (Thou shalt not kill)로 되어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율법을 지키며 살 때, 생명을 파괴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이럴 때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의 창조주의 모습대로 만들어진 존재가 되며, “그대는 살인을 안 할 것이다.”는 율법이 현실이 된다. 즉 우리는 하느님과 동 떨어져 스스로 의롭게 되려는 시도가 아니라, 기쁨과
사랑으로 율법을 깊이 생각하고 지키는 가운데
, 서서히 자신들의 주님을 더 잘 알고 더욱 깊이 닮아갈
수 있는 것이다
. 이런 신앙의 발전을 위해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들을 오늘 제 2 독서에서 밝히고 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표징은 증거를 요구하는 계산적 신앙을 뜻한다. 이를 따르는
이들에게 하느님은 자신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분일 뿐이다
. 지혜를 찾는 그리스인들은 일찍이 철학을 발전시키며
끊임없이 지적 세계를 건설했지만
, 이성적 합리주의 안에 갇혔다. 이들은
이성으로 파악되는 우주적 이성을 신으로 숭배했다
. 그러나 이들이 추구하는 지혜는 결국 인간적 지혜에
머물 수밖에 없다
. 반면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은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어리석음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십자가의 선포는 사람들의 기대와 정반대이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하느님 능력의 표징인데, 그 대신 무능력의
표징이라 할 수 있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선포되고
,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지혜인데 그 대신
어리석음의 표징이라 할 수 있는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선포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 어둠을 극복하고 믿음을
갖게 된 사람에게는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인간이 기대하던 참 지혜이며 하느님 능력의 실현임을 알고 믿게 된다
.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열정적인 성전 정화의 이야기는 사실의 이야기다. 성전 마당 한 가운데서도 외부에 속한 구역인 이른바이방인의 마당에서는 여러 장사꾼과 환전상이 특히 축제일을 앞두고 대 성황을 이루었다. 순례자들이
성전에 바칠 짐승과 성전 세를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 특히 성전 세는 고대 시리아 화폐로만 지불해야
했기에
, 성전에는 환전상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런 환전상의
책상을 뒤엎고 또 장사꾼을 내 쫓았다는 것은 우리 에게도 의미 있는 말이다
. 알다시피 오늘 예수님께서
삼일 만에 세우겠다는 성전은 바로 예수님의 몸을 두고 한 말이고
, 우리의 몸도 성전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사순절을 지내며 우리 자신을 정화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채찍을 휘두르시면서 장사꾼을 쫓아내셨 듯
, 우리 안에 장사꾼의 마음을 몰아내야 하는 것이다. 장사꾼의 마음은 이익을 창출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니, 하느님과
장사하려는 마음부터 몰아내야 할 것이다
. 사랑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 주셨던 예수님을 닮는
것은 십자가의 이치를 깨닫는 지혜로움이 아니라 십자가의 삶을 사는 어리석음 일지 모른다
. 그러나 그
어리석음은 우리를 참 기쁨에로 인도할 것이다
. 부활의 영광이 바로 십자가의 어리석은 죽음에서 비롯되었듯, 우리가 살아가는 십자가의 삶은 기쁨의 부활을 미리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