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복음 묵상
오늘은 성가정 축일이다. 이 축일은 1920년에 처음으로 제정되었다. 20세기 말부터 유럽에 시작된 산업
사회는 인류의 기본 공동체인 가정의 가치를 훼손하게 된다. 산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가정 중심의
생활을 하기 어려워졌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생명과 사랑의 온상으로서 가정의 가치는 점차 사라지고, 생산과 삶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풍조가 만연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사회 환경에서 가정의 중요성을 새롭게 강조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낀 교회는 성가정 축일을 제정하게 되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부모가 율법이 요구하는 대로 아들을 성전에 봉헌했다고 한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농산물의 첫 수확과 축산물의 맏배와 자녀들 중 맏아들을 성전에 봉헌했다. 봉헌한 것은 하느님의 것이므로 다시 하느님의 것을 부모가 사서 기른다는 뜻으로 부모는 첫아들을 낳으면 한 달
안에 성전 비용으로 5세겔(20데나리온)을 바쳤다. 그 의미는 이렇게 설명된다. 성전에 봉헌하였다고 해서 하느님이 가져가시는 것은 아니다. 봉헌은
하느님께 바쳐진 것이니 하느님의 마음이 그 봉헌물 위에 내려오게 하는 행위이다. 즉,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가 생산한 것을 우리의 욕심대로 처리하지 않고, 그것을 하느님의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대로 처리하겠다는 마음 다짐과
약속인 것이다
성가정으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은 우리보다 훨씬 힘겹고 가난했으며 시련이 많았다. 경제적으로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은 가난했다.
가장인 요셉의 직업은 목수였고, 우리가 아는 대로 일용직 노동자였고, 식민 시대의 목수는 천민 중의 천민이었다. 우리는 요셉과 마리아가
말할 수 없이 금슬이 좋고 서로 믿으며 잘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그 시작부터 출발이 좋지 않았던 결혼생활이 바로 요셉과 마리아 부부였다. 어느
날 약혼자였던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이 드러났고, 오죽했으면 고민 끝에 파혼하기로 혼자 마음을 먹기까지
하였겠는가! 이러한 갈등과 오해를 처음부터 안고 시작했던 가정이 바로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이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요셉
성인은 어떻게 이러한 어려움들을 잘 극복하고 승화시켜서 성가정을 만들 수 있었던가 하는 점이다. 그분들은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다운 삶을 사셨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하며 받아들이셨고,
요셉 또한 파혼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타난 주님의 천사의 말을 따라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였다. 뿐만
아니라 처절한 고통 속에서 죽어 가는 아들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성모님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서로에 대한 사랑의 확신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이 모든 문제와 갈등과 고통의 순간들을 하느님의 마음으로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며 인내하고 승화시켰던
가정이 바로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이다. 예수님은 요셉을 아버지로 마리아를 어머니로 한 가정 안에서 자랐다. 생명이
태어나 자라는 곳이 가정이고, 사랑과 봉사가 실천으로 전수되는 곳이 가정이다. 그럼 이런 가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세례로 봉헌된 우리의 자세가
오늘 우리가 들은 제2독서의 말씀일 것이다. 오늘 우리가
제2독서에서 들은 콜로새서는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자비를 다음과 같이 풀어서 설명하였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고,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며, 사랑을 실천한다. 그러므로
가정 안에서 항상 감사하는 사람이 된다.’ 이런 실천이 하느님의 생명을 사는 하느님의 자녀가 보여주는
삶이라는 말씀이다. 가정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배우며 하느님의 시선을 갖게 되어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