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 가능한 사명 ( Mission, Possible )

( 눈물속에 감추어진 위선자 )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드문드문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일도 만나고 또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되라만치 예사롭지 않은 경험도 

겪게 되겠지요.

 

지난번에,

누구나 겪을 수도 있을 그런 일 가지고 명색이 사내라면서 오랜 세월을 늘 울고만 지낸듯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고백하고 나서는 스스로 그래놓고선 마음이 두 갈래로 되어 착잡스러웠습니다.

 

발가벗어 다 드러냈으니 이제 어찌 문앞에 나서나 싶기도 한 한편,

이제 부끄러운 것 다 털어내서 속을 비웠으니 그리고 저 바닥까지 다 내려갔으니 두려운 게 무엇이 더

남았으랴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세속에 ( 바닥을 친다 ) 그런말이 있지요.

바닥까지 가고 속을 비웠으니 이제 남은 삶 동안 그안에 채울 일만 염려하면 될 거라는 

퍽 긍정적인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 참 고맙다는 마음입니다.

 

이제 새로 채울 거라면 잘 고르고 선택해서 좋은 걸로 채워야한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한다 그리고 새 천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도 않는다 ( 마르2: 21) 고

일러 주신대로 그렇게 함이 마땅하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참 이상합니다.

전에는 그렇게 정말 울고싶지 않은데 쏟아지던 눈물이 다 정리하고 털어내고 나서는 

더 울고싶어도 울어지지가 않습니다. 또 마음이 개운하고 평안하여 

더는 그럴 일도 없지요.

지금도 계속 그러면서 산다면 정말 궁상이고 청승이겠지요.

대신 자꾸만 웃고싶고 뭔지 그냥 자꾸 기쁘다는 생각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지금도 가끔 웁니다. 

자신의 일 때문이  아니고 이웃의 이야기 때문에 울게됩니다.

 

기억되는 일 중에 하나,

 

한국에 사신다는 김희아씨.

그 자매님은 어찌된 일인지 태어날 때 얼굴이 몹씨 일그러지고 아마 보기 흉할만치 그렇게 태어나서

그 엄마는 당황하여 낳자마자 포대기에 싸서 어느 보육원 문앞에 놓아두고 달아났다고 합니다.

다행히 원장님이 지극정성의 사랑으로 보살펴 키워주시고 그때 이름도 지었다고 하지요.

 

자라서 학교에도 가게 되었는데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고 하루는 선생님이 희아를 앞에 나와 서 있게하고는

아이들더러 그의 얼굴을 그리라고 했답니다.

어떻게 그런 이가 선생님이 되었는지요. 

희아씨에게 두고두고 씻길 수 없는 상처를 주었겠지요.

 

성장해서 소개로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늘 마스크를 쓰고 만나다가 어느날 마스크가 벗겨지고

그래서 달아난 희아씨는 교제를 말자고 선언하였는데 남자가 그러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청혼을 하였답니다.

 

그런데 이제는 희아씨와의 사이에 두 아이의 아빠까지 된 그 남자는 장애인도 아니고

아주아주 잘생긴 미남자 입니다.

 

처음 억지로 끌려서 가서 만나 뵌 시부모님들은 파혼하기를 원하고 용서를 청하는 희아씨에게

” 아가야. 우리가 너의 얼굴을 보고 며느리로 맞겠느냐. 우리는 너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보고 그래서

   함께 살고싶은 거란다. 우리 한식구가 되자. ” 그렇게 가족으로 환영했다고 합니다.

 

희아씨의 마음이 어디가 그렇게 예뻣을까요.

” 엄마, 얼굴도 못보고 우린 헤어졌었지만 저는 절대로 엄마를 원망하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고 정말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엄마.  오히려 제가 못생기게 나와서 엄마를 당화시켜 드려서 죄송해요.

  엄마가 절 보육원에 보내주시는 바람에 잘생기고 좋은 남편도 만났고 아주 예쁜 딸을 둘이나 얻었어요. 

  엄마, 사랑해요.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우리 모두 함께 만나고 싶어요, 엄마. ” 

 

그의 두 딸은 또 어떻습니까 ?

학교 친구들도 스스럼 없이 데려오고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사랑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때 그 비디오를 보면서 눈이 붓게 우느라 제대로 못보았지요.

이렇게 혼탁스런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운 이들이 있다는 게 너무나 고마워서 울었습니다.

 

비디오를 다 보고났을 때, 저는

저자신에게 큰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 네가 만약에 희아씨의(또는  그분와 같은이의)  남자친구였다면 얼굴을 마주하였을 때 어떻게 처신하였겠느냐 ?”

저는 바로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희아씨가 파혼을 청했을 때 저는 너무나 다행스런 마음이 되고 아마도 마지못해 받아드리는 것 처럼

표정을 꾸며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을 것이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물었습니다.

” 만약에 너의 아들이 결혼하겠다며 허락을 청하였을 때 그땐 어떤 태도였겠느냐 ? “

고개를 무릎아래로 묻고 들지못하였을 것입니다.

저는 희아씨가 집으로 간 다음에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겁입니다.

” 너의 마음을 이해못한다는 건 아니다. 그런 아들을 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결혼은 일시적 감정이나 동정심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혼인은 장난이 아니다.

좋게  이해시키고 다른 사람을 얻도록 해보자. “

 

아들보다 백배천배 못난 애비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 네가 딸이었으면 자라면서 엄마의 얼굴을 보고 엄마를 어떤 태도로 대하였을까 ? “

 

저는 자꾸만 괴로운 질문을 하는 저에게 손을 저어 그만해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저는 엄마와 외출해야할 경우가 되면 먼발치에서 따로 떨어져 걸으려했을 것입니다.

친구들이 놀러오겠다면 어떤 구실을 부쳐서라도 못오게 하였겠지요.

 

결국,

희아씨의 이야기를 보며 눈이 벌겋게 울었다지만 그것은,

모두가 새빨간 거짓이고 새까만 위선이였을 뿐입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보았지만 얼굴은 홍당무가 되고 눈이 벌겋게 충혈되도록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런 위선의 마음을 가지고 이웃들 앞에 서면 거룩한 표정을 짓고 또 늘 선한 일을 생각하는듯이

좋은 말만 골라가며 했을 것입니다.

 

두고두고 골방에 들어앉은 마음으로 생각하고 고민하며 주님앞에 부끄럽지 않을 

새로운 것을 나의 비워진 속을 채우려면 나는 무엇을 구해야할 것인가.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지난 어두운 일은 다 지나 물러갔으니, 새날이 맞았으니 새로워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구하자. 이루지도 못할 크고 허황한 일이 아니고 실행할 일을 찾자고

스스로에게 일렀습니다.

 

그래서 처음 수소문하여 찾아갔던 곳이 

Pro-Life League 에서 실행하고 있는 행사였습니다.

엄마를 따라나온 초등학생들, 건강치도 못해 보이던 80 노인들, 휠체어를 타신 장애인, 놀러가지도 않고

합세한 남녀대학 생들 그리고 또 많은이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낙태전문보건소 앞에서

피켓을 들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한시간을 계속 돌며 주님께 어린생명을 지켜주십사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날도 행사가 있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일기예보는 체감온도가 영하 30 도가될 것이라 했습니다.

 

양말도 두켤레, 내복에 장갑으로 무장을 하고 갔는데 그 추위에 위에서 열거한 그분들이 모두

저보다도 먼저 나와 있었습니다.

한 30 분쯤 걸으며 묵주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온몸이 무감각이될 지경으로 얼어오며 대단한 추위였습니다.

 

다른이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어린이도, 할머니도, 모든이들의 얼굴은 평화로운 미소와 함께 조금도 동요없이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도무지 부끄러워 대열에서 이탈하여 집으로 가겠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한 50 분쯤 되자 만약의 불상사를 염려한 지도자인 Scheidler 씨가 일기관계로 조금 일찍 마치겠다고 하여

해산하여 집으로 오게되었지요.

그때 기분으로 조금만 더 하였으면 저는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가 모르는 때에, 모르는 곳에서도 그렇게 의로운 일을 하는 아름다운 하느님의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음을 알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던중, 

제마음을 두드리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 나 혼자만 이런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온당한가 ?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의 형제자매님들에게도 그때 아직 없었던 이 모임을 알리고 동참하자고 해야지,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소속 교구청에 찾아가니 기꺼이 허락하고 도와줄 것이라 격려했습니다.

용기를 얻어 우리공동체에 청구하고 그래서 우리도 자체내에 RESPECT LIFE 를 정식으로 갖게되었습니다.

 

기뻣습니다.

참으로 기뻣습니다.

한 단체를 새로 만들고 그래서 새단체가 생겼다는 것이 기쁜 것이 아니였습니다.

 

이제 우리도 함께 하느님의 의로운 사업을 할수 있게되었다는 그 사실이 기뻣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이되어 

친교실에서 만나는 교우들께, 주보를 통해서, 우리의 Website 를 통해서도

여러차례 동참을 권유하며 또 호소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개인적 기대가 너무 컷던 것일까요 ?

제가 공연히 혼자 좋아 김치국을 먼저 마셨던 것일까요 ?

 

아직까지는 동참을 기꺼이 허락하시는 이가 없어 보입니다.

많은 이들이 기쁨으로 참여하시리라 기대했었습니다.

 

때론 조금 맥이 빠지는 느낌이 생기기도 하고 조금 실망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용기를 잃게 하거나 희망을 내려놓게 하지는 않습니다.

 

매일 주님께 아뢰며 기도는 합니다. 그러나,

아미도 저의 기도가 너무 미약하다 꾸중하시나보다 하고 더 열심히 주님께 구하려고 합니다.

 

오세요. 오십시오.

우리의 할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도구가 되려하오니 부디 써주소서 그렇게 기도하며 함께 할 일입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제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해야만 할, 그리고 

실행 가능한 사명 ( Mission Possible ) 입니다.

 

전에 텔레비죤에서 어린이들의 친한 친구였던 Mr. Rogers 생각나시나요 ?

그분이 늘 이렇게 물었죠.

 

” Won’t you be my neighbor, Would you ? ” 

 

 

 

하느님께서 세우신 확실한 계획에 사람인 우리가 만약 (What if ? ) 이라는 가정을 새워서 

그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낙태 ( Abortion )가 얼마나 무서운 일이고 그로인해 얼마나 끔찍스런 결과도 초래할 수 있나를 강조하는 목적으로

예를 들어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애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

 

그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아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소리로 외쳤다.

”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찐 된 일입니까 ? “

 

우리가 배워서 다 알고있는 바와같이,

엘리사벳은 세레자 요한의 어머니이시고, 성모가 되신 마리아는 그리스도 예수의 어머니이십니다.

( 루까1 장 )

 

두 어머니는 사람이 세상에서 만날수 있는 가장 훌륭한 아기를 모태에 안아 키우고 계셨던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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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저는 (만약)으로 가정해 봅니다.

있을수 없는 일이지만 무슨 일도 저지르고 실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고 세레자 요한의 목도 자르는

인간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래도 가정으로,

마리아와 엘리사벳을 헤로데가 강제로 지금시대에 저지르는 일처럼 낙태를 시키는 일이 있었다면 

이세상에 어떤 일이 있겠습니까.

 

 

 

 

왜 이런 가정까지 써가며 강조해야하는가 하면 

매일 온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낙태로 인하여  죽어가는 어린 생명중에는

그가 태어나서 이세상에 얼마나 좋은 일, 선한 일, 하느님의 의로운 일을 할 생명들이 있겠습니까 ?

 

남녀성별 때문에 낙태를 이유로 삼는 자들.

아기의 장애때문에 낙태를 이유로 삼는 자들.

강간을 이유로 삼는 자들, 엄마의 건강, 가난을 이유로 삼는 자들….

 

장애인으로  훌륭한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

장애인이 아니면서 멀쩡한 몸으로 온갖 죄악을 저지르는 몰염치는 얼마나 많습니까 ?

 

또,

태어나서 훌륭하지 못한 삶을 산다면 그 생명은 고귀하지 못합니까 ?

일등만 알아주는 세상이 옳아서 따라가야 합니까 ?

잘생겼다는 것이 그렇게 훌륭하고 그 겉모습만 알아주어서 모두 성형과를 찾아가야 합니까 ?

 

하느님이 주시는 생명, 그 자체가 훌륭하고 귀한 것 아닌가요 ?

 

저자신도 어디다 내놓아도 부끄럽기 짝이 없을 못난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하느님의 생명이니 저를 귀하게 여겨달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귀합니다.

우리가 귀하듯이 어른들에 의해 무참히 죽어가는 그 어린이들도 또한 우리처럼 귀합니다.

귀한 우리가 함께 다른 귀한 이들을  사랑하는 일꾼이 되면 좋겠습니다.

 

 

 – 본당 Respect Life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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