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주님의
길을 준비합시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어릴
적 나라의 높은 분이 지나가는 길을 공사하느라고 군수는 물론 도 지사까지 나와 웃통을 벗고 길을 닦고 포장
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오죽했으면 우리
동네엔 대통 령이 한 번 안 지나가려나? 하는 농담을 할 정로로
말입니 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주님의 길을 닦으라고 외 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마치 세례자 요한이
군수나 도지사 같이 길을 닦으라고 닥달하는 것 같아 어릴적의 추억이 생 각났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물며
일국의 대통령이 오는 길도 닦는데 만군의 주님 만국의 주님께서 오신다는데 길 을 닦는 것은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 맞습니다.
주님께서는 세 번 오신다고 성 베르나르도께서 말씀하셨는 데, 첫 번째의 오심은 나약한 육신으로(성탄) 두
번째의
오심은 영과 권능으로 (일상) 세 번째의 오심은 바로 마지 막 오심(재림)인데
영광과 위엄으로 오신다고
말씀하셨습 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마지막 오심의 사이에 두 번째 오심은,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우리 일상에 깊이 관여하심을 믿는 신앙의 말 씀입니다. 해서 늘
도로공사 직원처럼 평생을 길을 닦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시는 것이지요.
한국에 있는 우리 수도원의 성당엘 가면 감실 뒤에 십자가 대신 커다란 글을 써 놓았습니다. 바로 길
도(道)자이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왜 십자가 대신 한문으로 글을 써 놓았 냐고 묻는데, 바로 길을
닦는다는 것은 도를 닦는 것이기
때문이고, 십자가 역시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라는 뜻에서 같은 의미가 아니겠냐고 대답해준 생각이 납니다.
도(道)를
한마디로 설명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은 우리 모두가 길을 닦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 또 이 세상에서 잘 산다는 것은 도를 닦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도 도(道)는
필요하고, 직장 안에서도 도는 필요하며, 그리고 우리
공동체 안에서도 도는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 안에서 말하는 도는 무엇일까 요? 넓게 생각해 보면 도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길을 가는 것이 바로 도를 닦 는 것이겠지요. 예수님 안에서 길을 찾고 진리를 찾고 생 명을
찾는다는 말씀이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道가 아니 겠습니까?
우리
삶 안에는 나의 길이 있습니다. 내가 잘
먹고 잘 살 기 위해 닦은 나만의 길. 여기엔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
리가 없는 길. 특히 경쟁시대에 살려면, 그것도 잘
살려 면 내 길에 반대되는 모든 것들은 걸림돌이 되고 치워야 할
장애물일 뿐인 나만의 길. 공부하면서 경쟁을 배우고 친구들과 놀면서도 경쟁을 배우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오늘
복음은 내 길이 아닌 주님의 길을 닦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와 세례를 선포하였다.”고 전합니 다. 하느님께 등지는 것을 죄라고 하고, 하느님께로 돌아
가는
방향 전환을 회개(Metanonia)라고
한다면 나만을 위한 길에서 빠져나오라는 뜻이 아닐까요? 그것이 회개
라고
말하는 것 아닐까요? 회개는 회두(回頭)
즉 머리까 지 돌리는 행위임을 말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빠져 나 오던
룻의 아내가 두 다리는 하느님을 향해 가고 있었지 만 소돔과 고모라의 자기 세속적인 재물을 생각하고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소금 기둥으로 변하는 것처럼 생각까지 바꾸지 않으면 회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회개와 후회는
다른 것입니다. 회개한 사람은 삶이 달라 졌음을 행실로 보여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때가 되어
성 사를 보면 다
사해지는 죄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성사후 의 변해진 생활 즉 회개의 행실로 인해 “죄 사함“을
받아 하느님과의
관계가 정상화 되는 것이 진정한 회개가 아 닐까요? 길을 닦는
것, 회개하는 것 그리고 오시는 주님 을 준비하는 것
모두 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시는 그분의 길, 주님의 길을 닦읍시다!
– Fr. 김 두진(바오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