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 4 주일 김두진바오로 신부님 강론

12 20일 대림 제 4 주일 복음 묵상

오늘 복음에서는
그 때에라고 표현했지만 성서에서는 여섯째 달에로 표기된다. , 엘리사벳이 임신한 지 여섯째 달이 지났음을 말하고 있다. 숫자 6은 하느님 창조의 마지막 날을 기억하게 한다. , 여섯째 달의 의미는 사람을 새롭게 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 새로운 창조란 하느님과 사람이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어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는데, 가브리엘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이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그분이
은총이 가득한 이유는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지혜이신 말씀께서 사람의 모습을 갖추시기 위해 사람을 필요로 하신다
. 당신의 모상에 따라 사람을 빚어
만드신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함께 머무시기를 원하신다
.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하느님의 힘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하느님께서 그녀 안에서
행하시는 거룩한 신비를 드러내 줄 아기에 대하여 말한다
. 마리아는 처녀로서 어머니가 될 것이다. 그 아기는 하느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이 되실 분이다. 하느님께서는
시골의 한 처녀를 당신의 어머니로 만드셨고
, 당신 여종을 어머니로 삼으셨다. 세상은 작아 하느님을 품지 못하지만 이제 성모님은 하느님을 당신 품에 품으시게 되었다. 예수라는 이름은하느님이 구원 하신다는 뜻으로 장차 예수님께서 하실 일을 말하고 있다. 이름의
뜻처럼 그분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 세상을 다시 창조하실 분이시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 이 물음은 동정 잉태라는 신비에 대한 깊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천사는
성령께서 마리아에게 내려오시어 잉태하리라 한다
. 마리아가 열매를 맺게 하신 분은 성령이시다. 물위를 감돌며 창조를 이루신 분도 성령이시다.(창세 1,2 참조) 마리아에게 내려와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하신 성령께서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의 양식인 빵과 포도주에 내리시어
,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거룩한 성찬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믿는 이들의 몸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 마리아의 잉태는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요한 1,13) 성령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인간적인 면으로 보자면, 여섯 달 전에 즈카르야에게 전해진 소식은 기쁜 소식인 반면에, 마리아에게
아들이 생길 것이라는 소식은 암울하다
. 약혼자 요셉에게 배신을 안겨야 하고, 어쩌면 죽음을 받아드려야 할지도 모르는 엄청난 일이기 때문이다. 마리아에게
그 동안 꿈꿔 왔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 그런데 기쁜 소식을 들었던 즈카르야는 자신에게
어찌 그럴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믿지 않았던 반면
, 정말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던 마리아는 놀랍게도
주님의 뜻이라면 그렇게 하겠다며 순종한다
.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
순종함으로써 하와의 불복종을 되돌려 놓는다
. 그리하여 한 천사였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첫 번째 처녀의
타락이 다른 천사의 말을 받아들인 시골 처녀 마리아의 믿음으로 극복되고 있다
. 하느님께서 당신의 구원
계획을 시작하시기 위해 찾으신 장소는 화려하고 유명한 성전이나 회당이 아니었다
. 이름도 생소한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의 평범한 가정집이다
. 이사야 예언자의 표현대로 갈릴래아는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마태 4,16참조)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장소에서 당신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다. 하느님께서 찾아오신 이 갈릴래아는 지금 여기 복음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 각 사람의 존재를 의미한다. 죽음의 그림자 드리운 어둠 속을 걷고 있는 우리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 한 사람을 기억하고 날마다 우리를 부르신다. 마리아는
결코 특별한 분이 아니라 평범한 시골 처녀였다
. 그 신앙의 모범인 마리아가 그렇게 하느님께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신 것처럼 우리도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같은 고백을 해야 하지 않을까
?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하시려는 주님, 어서 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