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 2 주일 김두진바오로 신부님 강론

대림 제 2
주일 복음 묵상

 

한국에 있는 우리 피정집 성당에 가면 감실
뒤에 십자가 대신 커다랗게 길 道자를 써 붙였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왜 십자가 대신 한문으로 도를
써 놓았냐고 묻는데, 바로 길을 닦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도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고,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기에 그렇다고 설명 해 준 기억이 난다.

 

오늘 복음은 우리 모두가 길을 닦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정 안에서 도는 필요하고, 직장
안에서도 도는 필요하며, 그리고 우리 공동체 안에서도 도는 필요하다.
우리 신앙 안에서 말하는 도는 무엇일까? 넓게 생각해 보면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길()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길 즉, 예수님 안에서 길을
찾고 진리를 찾고 생명을 찾아야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나의 길은 있다.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닦은 나만의 길. 여기엔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특히 경쟁시대에 잘 살려면 내 길에 반대되는 모든 것들은 걸림돌이 되고 치워야
할 장애물 일 뿐이다. 그러나 이 길은 생존을 위한 투쟁일 뿐, 자비도
용서도, 사랑도 없다.

 

복음에서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와 세례를 선포하였다.”고 한다. , 죄 사함, 회개, 세례를
말하고 있는데 이것들의 관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하느님께 등지는 것을 죄라고 하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방향 전환이 회개(Metanonia). 이 회개는 회두(回頭), 머리까지
돌리는 행위, . 생각의 전환까지 포함된다. 소돔과 고모라를 빠져나오던 룻의 아내는 두 다리는 하느님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소돔과 고모라의 자기 세속적인
재물을 생각하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소금 기둥으로 변한다. 즉 생각까지 바꾸지 않으면 회개가 아니라는
말이다. 회개와 후회는 다른 것이다. 후회는 자기중심적 생각이다. 회개한 인간이라 함은 행실이 바뀌어야 한다. 즉 회개의 행실로죄 사함을 받아 하느님과의 관계가 정상화 된다. 이렇게 될 때 세례는 인간이 회개하여 죄를 용서받는 도리를 드러내는 실제적 행위가 되는 것이다.

 

회개는 죄를 고백하는 차원을 떠나 우리 삶
깊숙이 스며든 선과 악의 공존을 배우게 한다. 그렇다. 우리
안에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함을 인정할 때 우리는 올바른 길을 가게 된다. 그저 착하게만 살고, 잘못하면 회개하고, 주님을 맞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 다 좋은 말이지만, 사실 그렇게 살지 못할 뿐 아니라, 아직도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어두움을 설명할 길이 없다. 아까도
말했듯, 회개는 돌아섬이다. 생각까지 바꾸는 회두(回頭) 하려면, 먼저 우리의
어둠부터 알고 있어야 거기로부터 생각을 바꾸고 가던 길에서 돌아설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그분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는 다르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분은 여러분에게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입니다. 라고 했을 것이다. 이 말은 당신들이 요한의 물세례를 거부하면 하느님의 불세례를 받을 것이라는 경고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새로 생긴 사람은 그 사람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기 위해 과거의 모든 것들을 청산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전히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오늘
우리가 들은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라는 요한의 외침은 오만과 자만의 언덕을 겸손으로 깎아 내려야 하는 시기임을 알려준다.  무지의 골짜기를 하느님에 대한 지혜로
채우기 위해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 외치는 것 같다. 하느님을 거부하는 그 마음을 정직한 마음으로 고쳐 주님이 오심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길을 닦으라고 세례자 요한은 복음을 통해 우리게
소리치고 있다.

김 두진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