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김두진 신부님 강론

2021 1 3일 주님 공현 대 축일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 특별히 오늘 주님의 공현 대축일에 생각나는 가곡 성불사이다. 올해 성탄은 신자 없는 쓸쓸한 성탄인데 오늘도 마음이 허전하게 쓸쓸하다. 외면당하는
구세주의 모습 때문이다
.

 

동방에서 박사들이 베들레헴에 왔다는 것은,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예수님이지만, 이스라엘은 그분을
거부하였고
, 먼 이방인이 찾아 와 예수님께 경배하였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활동하셨지만, 이스라엘은 그분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 그 후 그분의 가르침은 이스라엘 민족의 테두리를 넘어 이방인들에게 더 큰 호응을 받았다. 오늘 복음은 박사라는 사람들이 해 뜨는 동방에서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 그들이 몇 명인지, 베들레헴을
다녀서 어디로 갔는지
, 후에 신앙인이 되었는지 등 우리가 궁금해 할 수 있는 일을 어느 것 하나도 말해
주지 않는다
. 그들은 잠시 무대에 나타났다 그들의 배역을 마치고 사라지는 배우와 같다. 그들이 세 명이라는 말은 복음서가 열거하는 예물이 셋이라서, 기원
500 년경에 발생한 전설이라고 한다. 오늘 복음을 보면, 그들이 나타나자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
고 복음서는 전한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헤로데 왕과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듣자, 즉시 놀라고, 그분에 대해 적의를 품었다는 말이다. 헤로데는 아기를 찾거든 자기에게도 알려 달라는 욕심 가득한 주문을 하면서 그들을 베틀레헴으로 보낸다. 말씀은 이스라엘 안에 주어졌지만, 이스라엘에 찾아오신 말씀을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이 찾게 된다
. 즉 길을 묻고, 찾는 사람만이 말씀을
만나는 법이다
.

 

오늘 베들레헴의 구유를 향해 길을 떠난 박사들의 여행은 말씀을
찾아 나선 신앙인들의 여정을 말해 준다
. 그들은 별을 보고 인간에게 주어진 구원의 말씀을 찾아 떠난다. 그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별 하나 밖에 없었다. 흔하디흔한 별들
중 하나인 그 별 밖에 없었다
. 그들은 아브라함이 자기 고향을 버리고 길을 떠났듯이, 그들도 떠났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드디어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만나 그들이 준비한 정성을 바치고, 우리의
시야에서 그들은 사라진다
.

 

우리 주위에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 안에 별들이 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공동체에 그 별이 숨겨져 있다. 별은
우리에게 주어졌다
. 이기심과 헛된 망상의 구름이 걷히면, 하느님
말씀의 별은 보이는 법이다
. 우리가 나누어야 할 것들, 숨기고
있고 품고 있는 우리의 것을 나누려고 하면 무수한 하늘의 별과 같이 우리 공동체에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별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 그것을 향해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 그러면 우리를 인도하는 별이
빛을 발할 것이다
. 헤로데와 율법학자들같이, 자신의 욕심이
정의라 생각하고 자신을 지키려는 오만이 저지르는 엉뚱한 주문을 피할 수 있다면 말씀을 찾아가는 우리의 발길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 그 말씀을 향해 조금씩 움직이는 우리의 삶 안에 하느님은 그 숨결로 우리 안에 계실 것이다. 외양간에 숨어계신 것처럼 아니 구유에 누워계신 것처럼 말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하느님을 향해 떠나야 한다
. 우리가 갇혀 사는 이기심과 무관심의 편안함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
. 우리의 죄도, 우리가 받은 상처도, 모두 잊어버리고 떠나야 한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분을 향해 길을
떠나면
, 별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신다. 우리가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보살필 때
, 하느님은 우리 실천의 숨결로 살아 계신다.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하는 실천은 그분의 보살핌으로 여정의 끝 즉 십자가와 부활에 도착하게 할 것이다
. 혹자는
하느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 각자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도 무방한 세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삶에는 우리가 창조되기 전 흙과 먼지만 있을 뿐 하느님의 숨이 머물 수 없다. 즉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 하느님의 숨결이 공동체에 있듯, 하느님의
숨결이 우리 자신 안에 살아있도록 함께하는 여정이 되어야 한다
. 구유에 누우신 그분은 임마누엘의 주님으로
오신 분이시고 바로 그 분을 잃는 것은 성불사의 밤처럼 주인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게 되는 슬픔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