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요한의 증언을 소개하고, 그 증언을 들은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가 그분과 함께 머물렀다고 말한다. 예수님과 함께 묵은 이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늘 복음은 신앙인이 예수님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예수님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즉,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사람이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
사랑 안에 머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15,9-10).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것은 그분이 보여준 아버지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그분이 실천한 그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여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문다는 말이다. 오늘 복음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머문 후,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보았기 때문이다. 그분이 보여준 사랑을 실천해 본 사람이 그분을 메시아로 깨닫는다.
요한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이 어느 날, 갈릴래아 호수 건너편에서 많은 사람들을 기적적으로 먹이자, 사람들은 “이분이야 말로 참으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다.”(6,14)라고
말하면서, 그분을 억지로 모셔 다가 왕으로 삼으려 했던 일이 있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해서 당신 “혼자 산으로 물러가셨다.”(6,15)고
복음서는 전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염원을 이루어 주는 메시아가 아니시다. 이스라엘이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 독립하고, 강대국이 되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노력하여 성취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오늘 복음이 말하는 메시아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 당신
스스로는 죄가 없으면서도 사람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주어 피를 흘린 분이시다.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은 그분의 삶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듣고, 그 사랑을 자기 주변에 실천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이라는 말이다. 오늘 복음은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고 말한다. 예수님이
어떤 사랑 안에 살고 계신 지를 보고 제자들도 같은 사랑 안에 머물렀더니,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그들이 깨달었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하신 실천을 몸소 해 본 사람이 그분을 메시아로 알아듣는다. 그분은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를 내어주어 피를 흘린 메시아이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같은 실천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그리스도 신앙인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 세상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으며 산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생명을 위해 기여하고 죽어간다.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지 못하는 생명은 자기 자신 안에 갇혀서 산다. 그렇게 유아독존의 생명은 볼품없는 자기 모습 하나
남기고 허무로 사라진다. 그것은 하느님이 베푸신 생명의 순리가 아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비롯된 신앙은 하느님 생명의 순리를 살라고 권한다. 그 순리를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빌면서, ‘내어주는 몸’이라는 성찬에 참여하고, 스스로를 내어주는 순리를 실천하는 그리스도 신앙인이다. 신앙은 자기만을 소중히 생각하는 소인의 근성을 넘어,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대의를 실천하자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과 함께 묵었던 안드레아는 자기 형 시몬을 예수님에게 데려왔다. 예수님은 그를 ‘눈여겨보시며’ 그의
이름을 바꿔 놓으신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세례를 받으면서 우리는 하느님을 중심으로
사는 새 사람으로 태어날 것을 약속하면서 세례명을 받았다. 신앙인은 자기만을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에 대해 알아듣고, 그분이 실천한 큰 뜻을 실천한다. 신앙인은 그 실천 안에 우리를 구원에로 인도하는 메시아를 깨닫는다. 신앙인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실천을 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