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십대 때에 사촌 오빠에게 몹쓸 짓을 당하였다.
남자들을 탓하기보다는 여자들을 탓하던 시대였던지라, … ‘네가 어떻게 행동을 했기에(꼬리를 쳤으면) 그 착한 오빠가…
’운운하며 여자만 욕하며 그녀의 상처엔 아랑곳하지 않았다. 물론 그분의 어머니는 가슴 아파
하시며 힘들어 하셨지만….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아예 사촌 오빠와 동거를 시작했고 가족들과 떨어져 나가 외톨이가 되었고 물론 사촌 오빠와 행복한 삶을 살지도 못했다. 한 삼 십년을 그렇게 원망과 분노의 삶에서 살았 노라며 통곡을 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엄마 품에 안겨 실컷 울어보고도 싶고, 돌아가신 아버님 산소에 가서
술이라도 한잔 올리고 싶다고 하면서 어떤 보속이라고 달게 받겠으니 제발 죄인인 나에게 힘든 보속을 주시라고 울부짖는 그분께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엄마를 찾아가 실컷 우시라고, 아버님 산소에 가서 술이라도 한잔 따라 올리라고…. 30년 넘게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온 그 힘듦이 미안했고, 측은했으며
돌아온 그분의 용기가 오히려 감사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 져야 한다.’ 요한복음은
십자가를 모세의 구리 뱀에 비유하였다. 민수기(21,4-9)의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가 종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투정부리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불 뱀을 내리신다. ‘이 불 뱀을 하느님께서 말 안 듣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복으로 보내셨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도 뱀의 꾐에 빠져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에 속아
하느님을 배반했고 죽음을 가져왔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하게 하셨고, 약속의 땅으로 가는 중에 불만과 투정 그리고 차라리 종살이가 더 편했으니 종살이 하던 이집트로 돌아가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하느님께서 그들을 종살이에서
해방을 시켰으나 이렇게 고생하는 것 보다 차라리 종살이가 더 낫다는 교만과 허영의 숲에 빠진 것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원하신 일이 아니었고 그들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결국 높이 달린 불 뱀 (높이 달린 자기의 교만)을 봄으로서 인간은 죽지 않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교만으로 하느님을 십자가에 박아 죽여 버린 엄청난 인간의 죄가 십자가로 높이 들어 올려
질 때가 바로 구원의 때라고 오늘 복음은 말하고 있다.
구원은 우리의
자유와 무관하게 주어지는 어떤 혜택, 시쳇말로 ‘대박사건’이 아니다. 구원은 무조건 믿어서 얻어내는 보상도, 인간의 신심행위에 대한 포상도 아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빛으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더 큰 자유를 누리며 사는 길이다. 쉽게
말해 기쁨으로의 초대이고 그 초대의 응답이 바로 신앙인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는 십자가와 함께 심판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데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이 심판하러 오신 게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지만, 그를 믿지 않는 사람들 스스로 심판 한다고 한다. 그
심판이란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심판”인데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파견된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의 계시 활동을 통해
심판도 사실상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빛을 거절하고 어둠을 받아들이는 자들의 선택이다. 심판은 단죄나 처벌을 뜻하지 않는다. 빛을 거절하고 믿지 않는 어둠의
지배를 받는 지속적 상태를 가리킨다. 어둠에 스스로 갇혀 지옥의 삶을 살게 한다. 계시의 빛이 믿지 않는 자들이 행실을 폭로하고 그들 자신의 실체까지 들추어내기 때문에 그들은 심리적으로 그
빛을 미워하게 되고 더욱 거절한다. 따라서 믿지 않는 자는 자기 잘못이나 죄를 스스로 드러내는 셈이
된다.
요한복음서는
그 서론에서 이미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빛이라고 말하였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건만 어둠은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1,4-5). 같은 말이 오늘의 복음에도 반복된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인간이
어둠 안에 있으면,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예수님 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빛 안에 산다. 광야에 높이 달린 구리 뱀처럼 우리 메마른 광야 같은 마음에
십자가가 높이 들어 올려지셔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