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진(바오로)신부님 사순 제 5 주일 강론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져라

 

불교 시간에 교수님이 개인 의견이라 하면서 예수라는 양반 보다
바오로라는 제자가 신학적으로 훨씬 마음에 든다는 말에 많은 젊은 수도자들이 발끈했다
이리저리 교수에게 따져 물었지만, 말과 이론으로 교수를 이길
수 없었다
. 그런데 정의롭게 사는 것이 수도생활의 목적이라고 말해왔던 평소에 말이 적던 수사가 다른
수녀들의 패배
(?)에 분개 했는지 교수께 이런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얼마전에 설렁탕집에 갔는데스님께서 설렁탕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았는데 설명 하시겠습니까
? 교수님은
무심하게
 “자네 고기를 좋아하는 모양 이구만“네
좋아해 가끔 먹으러 가는 집에서 보았습니다
.”“자네는 수도자이기 전에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게. 성서를 아무리 읽어도 그런 마음으로 읽으면 성서는 남의 탓만 하는 도구가 될 것이네. 이 친구야자네는 매일 고기 먹으면서어쩌다 중이 한번 먹은 고기 가지고 왜 그리 호들갑인가?”모두
크게 웃었지만
,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내가 나를 볼
수 없고 남은 잘 보여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남의 잘못은 크게 보이고 내 잘못은 적게 보는 실수를 오늘 복음에서도 읽는다
.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의 간음한 여인과 예수님의 이야기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끌고 나타나서
어떻게 처리해야할 것인지 묻는데
이는 예수님을 엮을 의도로 만들어진 사건이다. 사실 유대법은 간음에 대해 매우 엄격했는데 간음죄가 성립하려면 간음하는 두 남녀가 현장에서 잡혀야 했고, 목격자는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의 경우는 법정도
아니고 함께 한 남자도 없으며 증언자들만 있다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해 이 여인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예수님이 만일 이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로마법을 어기는
것이 되며 동시에 그분이 가르치신 사랑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게 된다
. 사실 복음은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얻으려고 질문을 하고 있음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을 용서해 주라고 말한다면모세의 율법을 거스르게 되고고발당할 수도 있고, 율법대로 처리하라고 하면 자비와 용서를 선포하신 예수님 자신의 복음과 모순된다또 정치적으로 로마 정부에 반기를 드는 자로 고발당할 수도 있다예수님
시대에 로마 정부는 유다인들에게 죄인을 재판하고 사형할 권한을 박탈했기 때문이다
.

 

예수님께서는 땅바닥에 무언가 글을 쓰시는 이상한 행동을 하신다이는 “하느님을 떠난 죄인은 땅에 기록되리라는 예레미아(17,13) 예언과 연관 지어 설명될
수 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고하느님만이 심판하실 수 있으니그 분의 심판에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예언자적 표시라 할 수 있다
.

 

 

 

 

그러시고 나서 몸을 일으켜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고 말하시고는 다시 땅바닥에 무언가를 쓰신다먼저 예언자적 표지를 보여주셨고다시 말씀으로
표현하신다
그러시고 나서 다시 몸을 굽혀 땅에 무엇인가 쓰신다예수님의 이런 행동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먼저 표시를
보여주셨고
, 그 표지를 말씀으로 설명해 주시고다시
표시를 보여주심으로 좀 더 분명한 의미를 드러내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을 땅에 쓰시고하느님만이
죄인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신 것이다
.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말씀에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떠나간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죄가 많아서 자리를
먼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먼저 깨달었기 때문이다
사실 성서에서 나이 많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을 지칭한다
.

   

이로서 그 여자는 간음죄로 고발되어 끌려온 죄인으로서 예수님 앞에예수님은 그녀를 심판하는 자로 그녀 앞에 남아있다당신의
죄를 묻던 자들은 다 어디에 있는지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는지 묻던 예수님께서 “가거라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신다그 여자는 하느님의 자비로 인해 죄의 용서를
받았지만
그 자비와 용서는 바로 이제부터 더는 죄를 짓지 않는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죄의 용서라는 선물을 받았다면 새롭게 살아야 할 의무도 함께 받는 것이다.

 

다시는 죄 짓지 말라는
말씀은 우리게 큰 부담이다
다시 죄짓고 싶은 사람은 없음에도 노상 똑 같은 죄를 반복하는
범인들에게는 예수님의 이런 말씀이 큰 걸림돌 같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을 반복적으로 불행하게
살지 말라는 뜻으로 들어야 한다
죄를 짓고 불행에 빠져 힘들게 살지 말라는 그분의 배려의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 뒤에는 죄를 용서 받은 사람은 생활이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고해성사만 믿고 매일 같은 죄를
반복하며 매일 같은 삶을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죄로 인해 상처를 주고 산다면다시 죄를 지어 상처 내는 짓을 하지 말라는 그분의 사랑의 말씀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To be or not that is the question!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햄릿의 독백처럼 우리도 결정해야 한다. 죄 안에서 과거에 매달려 슬퍼하고 괴로워 할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께서
열어 주신 곳에서 새로움을 통해 기쁘게 살 것인가
? 남을 향한 분노로 돌멩이를 들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자비로 용서할 것인가?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 볼
만한 질문이 아닐까 싶다
.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