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8 주일 김두진(바오로) 신부님 강론

산에서 나와야 산이 보인다.

달나라에 다녀온 암스트롱에게 기자들이 물었다. ‘달에 가서 무얼 보고 왔는가’“지구가 아름답다는 것을
보고 왔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그 지구가 아름답고 소중한 별이라는 것을 보기 위해서,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달나라까지 가서야 볼 수 있었다
.

   

오늘 복음을 ‘너
자신을 알라
‘로 읽었다. 오늘 복음에서는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지만, 누구나 다 배우고 나면 수승처럼
될 것이다
.”이라는 말씀이 어렵다. 혹 너희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알려준다고 하여 이것이 전부가 아니므로 마치 하느님의 뜻을 전부 아는 것처럼 위선 떨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 특히 본당신부로 살면서 하느님을 선포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음을 고백 한다. 따라서
이 말씀을 사제라 하여 신자들을 가르치려고만 들지 말고 부단히 노력하여 네 자신부터 말과 행동을 같게 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야 된다는 뜻으로 들려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이 세상에 다 배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해도 하느님에 대해 다배우지 못했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모두 배우지 못했다. 설익은 지식으로 그나마 하느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지식으로 사람을 가르치려는 모습이 신자들에게 꼴불견으로 보이지
않을까 그래서 걱정스럽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처럼 되려면 한참 멀었지만, 가르쳐야 하는 내 처지가 불안스럽다.

   

‘내로남불’즉,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의 줄임 말이 있다
. “남이 일을 끝내지 않았다면
게으르다 하고
, 내가 일을 끝내지 못했다면 바쁘고 많은 일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남이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하면 말 많은 수다쟁이라 하고, 내가
그렇게 하면 건설적인 비판을 한다고 생각한다
. 남이 자기 관점을 주장하면 고집쟁이라 생각하고, 내가 그렇게 하면 개성이 뚜렷하다고 생각 한다. 남이 내게
친절하게 대하면 뭔가 필요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 내가 그렇게 하면 유쾌하고 좋은 성격 때문이라
생각한다
. 남과 내가 이리 다르니 얼마나 힘든 세상일까? 다른
사람을 보는 눈과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이토록 다르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잘 드러내지만 얼마나 웃기며 슬픈 현실인지 모르겠다
. (요새말로 웃픈현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은 자기 자신에게 큰 허물이 있는데, 남의
작은 허물을 고치려는 위선을 말하고 있다
. 그러나 다른 이에게 충고를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충고 한마디라도 하려면 그보다 먼저 두세 차례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되돌아보라는
뜻으로 읽으면 더 큰 의미가 있다
. 진정한 자기 성찰 없이 참된
충고나 가르침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제 큰탓이옵니다.”라는 고백이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서 많은 경우에 “네 탓이요, 네 탓“을 외치며 억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다.

   

말은 청산유수인데 삶이 뒷받침 되지 못하여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을
가끔씩 본다
. 자신의 큰 허물은 보지 못하면서도 남의 작은 허물만 보고는 나무라는 사람도 있다. 삶의 모범은 보이지 못하면서 대접받으려고 하는 사람도 만난다. 그래서
예부터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방귀뀐
놈이 성낸다
.’라는 말이 생겨났나 보다.

   

다른 사람의 지극히 하찮은 잘못은 크게 보이지만 자신의 잘못은
작게 보이는 것은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기
때문이다
. 이미 여러 번 말씀 드린 대로 하느님의 눈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저 내 눈에 들보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루가6,42)는
주님의 말씀이 크게 들린다
. 철저한 자기성찰만이 우리에게 이웃의 잘못 앞에서 자비롭고 인정
있는 사람이 되게 한다
.

   

“너나 잘해“라는 노래가 있다.

‘너나 잘해, 내
걱정 하지마
!’‘너나 잘해, 잘난 체하지 마’ 하며 부르는 노래다. 그런데 자기의 삶이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 남에게 강요하면 말하긴 불편해도 속으로는
“너나 잘해!”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 삶이 풍요롭지 못할 때 하는 말이나 행동은 헛소리에 불과하고, 위선적인 행동이다. 따라서 우리는 삶으로 말해야 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 대신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힘“이라 한다면
잔소리가 될까
? 그러나 “자신이 아는 대로
살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이 안다 한들 무슨 유익함
“이 되겠는가? 머리에 있는 지식이 마음으로 내려오고, 손발에서
실천되어야 하는데
, 분명 이것도 신앙의 십자가다.

 

우리는 매 미사 때 마다 “제
탓이요
,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하며 가슴을 친다. 이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가 내 탓을 찾으면 용서가 되고, 화해가 되며, 화목과 친교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달에 가서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보고 온 우주인처럼 나에게서
나오면 내가 보인다
. 내가 얼마나 작고 좁고 곡 닫힌 자물쇠였는지, 그리고
세상이 얼마나 크고 장엄한지
, 그리고 그만큼 우리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인지, 우리가 왜 하느님의 희망인지가 보인다. 우주인이 지구를 떠나서 지구를
보았듯 산에서 나와야 산이 보이는 법이다
. 같은 이치로 나에게서 나와야 내가 보이는 법이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