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의 시작 주님의 성지 주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영어로는 ‘Palm Sunday of Passion of the Lord’라 한다. Passion은 고통이란 뜻보다 열정이란 뜻이 먼저다. 인간 사랑에 대한 열정이 고난으로 이어진 것이니, 우리의 죄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구원과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성금요일은 나쁜 (Bad) 금요일이 아니라 ‘Good Friday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온 인류를 새로이 낳고 키우기 위해 하느님과 그분의 아드님 예수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하셨는지 고스란히 보여주시는 사랑의 절정, 거룩한 주간(성주간)의 시작이다.
때는 축제인 무교절.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제거해야 할지 그 방법을 찾고 있었고, 유다는 이미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길 적당한 기회를 찾고 있었다. 오늘 예수께서는 당신의 비장한 내면의 감정과 의지를 나타내신다. “간절히 바랐다”, “다시는 먹지 않겠다.”, “결코 마시지 않겠다.”는 말씀은 뭔가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렇게 주님께서 간절히 바라신 이유는 첫째로 이 자리는 예수님의 말귀를 못 알아듣는 제자들에겐 예년과 같은 파스카요 축제요 식사 자리겠지만 예수님께는 죽음을 앞둔 고별의 자리요 제자들에게 주실 마지막 말씀의 자리였다. 두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밝혀주는 역사적 사건인 이집트 탈출 (출애굽)과 시나이 계약(십계명)으로 하느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의 옛 계약을 새로운 의미로 완성하고자 하시는 자리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 주시며,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하시고, 또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이다.”라 하신다. 곧 구약의 파스카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음식인 누룩 없는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최후만찬 말씀과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몸을 주시는 생명의 양식이요, 피로써 맺는 새로운 계약의 음식이 되었다. 이 계약으로 신약의 새 백성이 탄생하기에 예수님은 고난을 겪기 전에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라셨고,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고 하신다.
식탁자리는 친교를 이루는 가장 좋은 자리다. 그래서 우리네 인생에서도 중요한 일들 생일, 결혼 회갑 등에서 꼭 차리는 것이 식탁이다. 땅을 일구고 곡식을 추수하기까지 그리고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수많은 사람의 땀과 노고와 정성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땅과 햇빛과 공기와 물과 바람 등을 주신 하느님의 섭리도 함께 배어 있기에 음식을 함께 먹는 식탁은 사랑과 생명을 나누는 자리가 된다.
예수님은 이런 식탁자리에서 말씀하시고 친히 음식이 되시어 우리에게 사랑과 생명을 주시고자 하신다. 우리의 먹거리가 되실 그분은 ‘빵집’이란 뜻인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고, 소들의 먹이통인 구유에 눕혀 지셨다. 그리고 높고 낮음을 떠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까지도 초대하시고 음식을 함께 드신다. “그러나 보라, 나를 팔아 넘길 자가 지금 나와 함께 이 식탁에 앉아 있다.”이 사랑의 식탁에는 예수님을 팔아 넘길 배반자도 함께 있다. 이 괴로움을 시편 저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원수가 저를 모욕한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제가 참았을 것입니다. 저를 미워하는 자가 제 위에서 거드름을 피운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제가 그를 피해 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 내 동배, 내 벗이며 내 동무인 너, 정답게 어울리던 우리 하느님의 집에서 떠들썩한 군중 속을 함께 거닐던 우리”(55,13-15)였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은 이 식탁에서 그 배반자에게도 빵을 주시고, 그 배반자를 위해서 피를 쏟아 내신다.
또 다시 맞이한 성주간, 우리 죄인들을 향한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은총의 시기다. 성주간동안 우리는 다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 이 기간 동안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오늘 내 인생에 던져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묵상하도록 초대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끔 우리를 초대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정녕 역설적이기만 하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 십자가 사건은 이해 되지 않는다. 능력의 주님께서 사악한 무리들의 끝도 없는 폭력 앞에 어찌 그리도 무력 할까, 만 왕의 왕께서 일개 병사들의 조롱과 멸시 앞에 힘없이 당하시는가? 메시아께서 인류역사상 가장 고독한 모습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그렇게 죽어 가시는가?
사람들 안에서 사랑이 깊어지면 ‘눈에 콩깍지가 낀다고 한다. 이때는 사람이 비정상처럼 보이고,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한다. 소위 상대방의 모든 것이 다 좋아 보이는 현상이 콩깍지 현상이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어 진다. 제일 먼저 물질공세로 나가고, 무엇을 주든 아깝지 않아 평소의 소득으로는 무리가 되는 고가의 선물도 마다하지 않는다. 점점 너와 나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고, 더 나아가 너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가 선다. 그렇다! 부족한 우리 인간들 사이에서도 이처럼 한없는 자기증여의 삶이 있다. 인간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사랑이 이러한데,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자기증여는 얼마나 큰 것이겠는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천수만 배의 자기증여가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보고 체험하는 시간이 거룩한 주간, 즉 성주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