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무게
한국에서 서울 올림픽을 유치하여 준비 할 때 유행하던 노래가 있었다. 아침 출근길에 동네 스피커로 아침 마다 듣던 노래였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가 후렴부분에서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하는 이 노랫말은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아름다운 강산에 살고 있음을 기뻐하는 노래다. 노랫말을 작사하신 분이 이런 뜻으로, 또 노래하신 분이 이런 마음으로 노래하신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분명 사랑은 아니다.
하느님 나라는 내 만족이 채워지고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그런 곳은 분명 아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로마 14:17)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의 사랑은 "죽기까지 하시는 사랑"이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사랑에 대한 오해가 참으로 많다. 나의 만족이 너의 기쁨이 되도록 한다면 그것은 폭력이다. 나의 기쁨이 너의 만족이 되도록 한다면 그것은 독재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나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횡포요, 독선이며 사랑을 가장한 욕망이다. 지금도 전쟁의 폭력으로 힘들어하고 시끄러운 이유도 자신의 뜻을 이루려 하는 독선과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기중심적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새로운 계명을 선포하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말로는 하기 좋지만, 실제 사랑하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사랑은 내 뜻을 이루어 내는 고집이 아니라 네 뜻을 이루어 내는 배려요, 따뜻함 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내 만족을 찾는 욕망이 아니라 이타적이며 몰아적 본질을 지닌 내어 줌이다. “그러나 아버지!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마태오 26:39)
오늘 제 1독서에서 바오로는 첫 선교 여행을 마치고서 안티오키아로 돌아온다. 안티오키아 공동체에서 바오로는 당시 그리스 세계를 복음의 빛으로 비추기 위해 교회로부터 파견 받은 바 있다. 사도 바오로는 특히 자기가 세운 공동체들로 하여금 자기들에게 들이닥치는 박해와 맞서도록 하고 그 교회들을 활성화하기 위해 ‘원로들’을 뽑아 세우는 데 특별히 많은 신경을 썼다. 교회 안에서 사도가 맡은 임무는 신자 공동체로 하여금 자기 속에 갇혀 있지 않고 다른 모든 공동체들과 함께 호흡하고 공동보조를 맞추며, 모든 사람에게 열린 자세로 동분서주하면서 온 몸과 목숨까지 바치는 충실한 ‘종’이 되도록 하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긴밀하게 맺어져 하나로 뭉친 공동체들은 세상과 역사 한가운데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을 전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어 하느님의 자녀들을 모아들이는 본연의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들은 제 2 독서인 묵시록은 변화한 인류가 자기를 만들어 낸 창조주와 더불어 올리는 결정적인 결혼식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그 날에 본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신랑(하느님)께서 올바른 사람들의 얼굴에서 눈물과 슬픔을 말끔히 씻어 줄 것이다. 그 날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신 사람들과 함께 계시면서 죽음과 슬픔 따위의 고통을 없애 주실 것이다. 그 날 인류는 영원한 젊음으로 빛날 것이며 더 이상 늙지 않을 것이다. 그 날은 또 악령을 상징하는 지옥의 용이 거처한다는 바다가 이집트 탈출 때처럼 하느님 백성의 진군 앞에 스러지고 말 것이다.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마지막 의지를 밝히신다. 이 말씀은 신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 가운데 하나다. ‘계명’(엔톨레)이라는 낱말은 임무, 명령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는 새로운 계약을 말한다. 모세가 하느님과 맺은 시나이 산에서 계약에서 십계명을 받은 것처럼, 새로운 계약에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는다. 사랑하라는 것이 새로운 계약의 주요 골자다. 사랑하라는 그 계명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사람들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목숨을 바치기까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참조. 15,13; 1요한 3,16). 다음 구절에서는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특징으로 규정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13,35) 모든 사람을 형제자매로 아끼고 섬기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표시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복음은 늘 우리게 도전을 불러온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는 이 말씀은 우리의 정체성(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알리는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고 사는가에 따라 우리는 그분의 제자가 되고 그분을 배척하는 사람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는가에 따라 묵시록에서 말하는 새 하늘, 새 땅이 열리는 순간에 "통곡하며 이를 가는” 사람일지, 아니면 새 하늘, 새 땅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게 될지 결판나게 될 것이다. 사랑도 말하기는 쉽지만 살아가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서로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랑으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알아보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이 얻는 십자가의 무게가 아닐까 싶다. 우리 모두 사랑의 십자가의 무게를 느껴보자.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