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5일 사순 제 2 주일 김두진(바오로)신부님 강론

 

3 5일 사순 제 2 주일

예수님께서 오늘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만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그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이 눈 부시게 변하였다는 내용이 오늘 복음 내용이다오늘 복음은 세상과 구별되는 높은 산에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게 되고이를 체험한 이들은 그것을 간직하고 다시 세상으로 내려가기 위한 것임을 말한다. 마태오 복음은 영광스러운 변모(마태 17,1-9)의 내용을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예고(16,21-28) 다음에 넣었다. 수난과 죽음에 대한 언급으로 혼란스러워 하던 제자들에게이제 모세(구약의 율법)와 엘리야(구약의 예언자들)의 시대를 아우르는 완성의 때가 오고 있음을 이 신비적인 체험을 통해 알려주신 것이다

 

오늘 복음의 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사 두 개가 있는데, ‘오르다내려오다가 그것이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1)로 시작하고, “그들이 내려올 때 (9)로 마무리 된다. 하느님을 온전히 만나기 위해 그분의 현존의 높은 곳으로 오를 필요가 있고 그 만남이 이루어진 뒤에는 낮은 곳, , 불의와 가난지침과 힘듦이 있는 세상으로 내려와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변모 사건은 “높은 산”(1)에서 발생한다.

고대로부터 산은 하느님의 현존이 있는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다거기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시는데,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2)고 한다. ‘변하다’는 그리스어는 ‘메타모르포오마이’이며 이는 모양형태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transfigure 혹은 transform이라고 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오늘 복음에서 높은 산에 오르시기 직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고, 시몬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 대답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정말 그리스도이시고그분은 모세나 엘리야와 같은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새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 나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자 그는 충격에 빠지게 된다. 이런 절망적 상황 속에서 베드로가 목격한 장면즉 높은 산에서 예수님께서 빛처럼 귀하게 변하신 모습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베드로에게 ‘그럼 그렇지! 하는 확신을 다시금 갖게 했고순간 들뜬 마음을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외친다. “주님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하나는 모세께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리야와 모세에게 거는 정치적종교적 기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해 예수님께서 백성들이 바라는 영웅적이고 화려한 인물로 우뚝 서기를 바라는 속마음을 내 보인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늘의 소리가 들리면서 베드로의 환상은 깨진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것은 너희의 환상과 기대를 채워줄 그곳에 초막을 짓고 머무를 것이 아니라 즉시 산 아래로 내려가서 부활을 향한 수난 속에 자신을 던질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라는 아버지의 말씀이었다왜냐하면이것이 바로 제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여야 하고, 높은 산 아래 현세의 삶에서 각자가 수난의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누구도 영원한 생명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1독서로 들은 창세기에서 구원의 출발을 알리는 말씀을 듣는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 모세에게 이 부르심에 응답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익숙하고 안정된 울타리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안정은 지금 누리는 현재이지만복은 불확실한 미래다당시 상황으로는 친족의 보호를 떠나는 것은 위험에 자신을 고스란히 내맡기는 것이다.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복음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정말 돌직구 같은 말씀으로 감언이설로 상대를 안심시키거나 착각하게 만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복음을 믿고 따르는 길은 고난의 길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바오로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곧 새 희망을 제시한다그것도 "환히드러내 준다 "환히"라는 단어는 몇 절 안되는 제2독서 안에 마치 복음에서 그분의 옷이 빛나는 것처럼 "빛나다"라는 표현을 두 차례나 반복 한다사실 빛과 어둠은 하나일지도 모른다그래서 빛이나 어둠 하나만 선택할 수 없다그것이 인생이건 신앙이건 다른 어떤 영역이건 간에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다닌다. 높음과 낮음, 영광과 수치, 생명과 죽음,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 등 약하고 죄인인 우리는 그 한가운데를 아슬아슬하게 균형 잡으며 걷고 있다.

 

우리도 높은 산의 예수님처럼 자신의 인생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점의 산에 서 있게 된다계속 머무르고 싶은 성공한 사람의 모습으로한 부분도 내어주기 아까운 가진 자의 모습으로 혹은 자기 마음껏 갑질 할 수 있는 권력자의 모습으로 영원히 머무르고 싶고거기에 머물 마음으로 초막을 짓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그곳은 모든 욕심과 환상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으로 온전히 변화되어 내려와야 할 기회의 산이기도 하다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을 버리고 수난의 현장으로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빛의 길이며 부활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권고한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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