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일 연중 제 26 주일
“우리가 남이가?” 우리라는 말을 자주 쓰는 우리다. ‘우리’는 좋은 것이고 나쁜 뜻도 아니지만, 우리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쓰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집단 이기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흔히 말하는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단어들이 그런 집단 이기주의를 감추고 있을 수 있다. 종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속하는 종교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면, 다른 종교에는 진리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진영에 있는 원로에게 영이 내렸다고 배 아파하는 여호수아와 자기들과 함께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능력을 빌어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시기 질투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성령의 은사를 마치 자기들이 특허 낸 것처럼 독점하려 한다. 모세의 제자 여호수아와 주님의 제자들조차 그러하다. 우리가 오늘 제1독서로 들은 민수기에서 모세는 장로 일흔 명을 택해서 만남의 장막에서 그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영을 받게 한다. 그런데 모세가 택하지 않아서, 장막에 가지 않았던 장로 두 사람에게도 영이 내려 예언하기 시작했다. 모세의 제자이면서 시종인 여호수아는 그 소식을 듣자, 모세가 택하지도 않은 사람이 영을 받으면, 그 집단 안에 질서가 문란해 진다고 하면서 그들이 하는 예언을 말려야 한다고 권한다. 그러나 모세는 “너는 나를 생각하여 시기하는 것이냐? 차라리 주님의 온 백성이 예언자였으면 좋겠다.”라 하며 자기가 한 선택이 중요하지 않고,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요한이 자랑스럽게 상기된 얼굴로 말한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우리와 함께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는 우리 제자단에 속하지도 않은 자가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니 시기심도 생겼고, 또 예수님의 제자라는 권한도 행사하고 싶고 해서 우리와 함께 하든지 아니면 우리 주님의 이름을 이용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은 셈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자기들이 특허 받은 전유물인 것처럼 생각 한다. 오늘 날에도 자기 교회나 교단에 속하지 않으면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교회나 단체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서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를 폄하 시키고 무시해서는 안 됨에도 말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말리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나를 욕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라고 대답 하신다. 예수님은 교회 십자가를 세웠느냐, 십자가 색깔이 무엇이냐, 하느님이냐 하나님이냐 등의 사소한 문제로 쉽게 판단하고 배척하는 것을 막으신다. 다소 다른 점이 있더라도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하는 일을 하는 이들은 우리와 같은 그리스도의 지체이지 않을까 싶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를 대접하는 것이 상급을 잃지 않는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사람도 반드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 당시 기록을 보면 실제로 로마 군인들이 반역자의 지도자를 처형할 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목에 맷돌을 묶고 바다에 던진 일이 있었다고 한다. 너무나 끔찍한 이 사건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런 경고는 요한의 그릇된 행동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고 할지라도 스스로 죄를 지을 수 있다고 경고하신 셈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의 범위를 열 두 제자에만 한정하시지 않고 주님을 믿고 복음 전파에 참여한 모든 숨은 사람도 제자들로 인정해 주시는 듯하다.
이어서 예수님은 “네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리고, 네 발이 너를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라고 하신다. 너무 섬뜩하다. 손과 발과 눈은 그 행동에 따라 얼마든지 악행으로 이끌 수 있는 신체 기관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들 신체의 기관들이 악행의 도구가 될 바엔 아예 없애 버리는 편이 낫다는 것이지만 이 말씀을 말 그대로 따라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는 듯하다.
사실 손과 발과 눈은 인간의 내적 지향이 결정하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외적 표현에 불과하다. 그러니 신체의 기관, 즉 도구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 그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마음이 문제가 된다. 비록 과장되고 무리한 요구이긴 하지만, 죄의 심각성을 진지하게 깨닫고, 우리 신체의 모든 기관들이 선행의 도구로 사용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죄를 짓지 않으려면 결국 사랑하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예수님의 사랑이 그랬듯 사랑은 우리 모두를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