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일 연중 제 22주일 Fr. 김두진(바오로) 강론

 

9 1일 연중 제 22 주일

세상을 살면서 내 자신이 만족하고 남이 만족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내가 만족하면서 남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손이 안으로 굽듯 자신의 만족을 먼저 찾기 때문이다. 이웃에게 좋은 평을 받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이웃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좋은 평가 때문이 아니라 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 만을 위한 삶은 이 세상을 너무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너무 안으로 굽어 오그라들지는 말아야겠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지켜봤던율법의 대가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행동을 비난 한다.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어기는 제자들에게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조상들의 전통도 따르지 못하는 제자들의 스승이 과연 올바른 스승이고 훌륭한 스승이겠느냐'는 질시의 눈으로 그들의 스승인 예수님께 따져 묻는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빨리 운전하는 자동차 운전사가 밉다. 내가 운전할 때는 횡단보도를 천천히 걸어 건너는 사람이 얄밉다. 흐린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맑은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기분이 울적할 때 위로를 바라기도 하고 기분이 좋을 때 신이 나기도 하는 우리의 삶의 변화무쌍한 모습이 드러나지만, 이런 변화무쌍한 내 처지와 내 기분이 내 위주로 산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래서 세상을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지 모르겠다. 내 맘에 드는 사람들 하고 만 어울리면 되는데,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상인지라 복잡해지고 시끄러워지는 모양이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바라는 것은 정신 병자의 초기 증상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이처럼 어제와 똑 같이 살아가면서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것은 로또도 사지 않고 로또 맞기는 기다리는 것과 같다. 생각을 새로 하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저 매일을 똑같이 살아 그 자리에 머무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회개와 보속은 우리 삶에서 계속되어야 한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은 행동으로,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성격을 만든다.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것도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안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말씀이다. 무엇을 품고 있느냐는 그래서 중요하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먹는가를 보지 말고 왜 먹는가를 봐야 하는데 먹는 의미는 잊은 채 먹는 방법만을 따지는 바리사이들의 오그라든 마음에 분개하신다. 남을 비난하는데 열을 올리지 말고 올바른 생각에서 올바른 행동이 나오니 마음을 고쳐먹으라고 하신다. 남에게 보이는 행동 보다 어떤 마음으로 임하는 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며 입술로는 하느님을 공경하지만 마음은 이미 떠나 있음에 가슴 아파하신다. 잘못된 행동은 고칠 수 있지만, 마음이 오그라들면 속에 있는 진실은 보지 못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들만 찾게 된다고 하신다.

우리 삶에는 지켜야 할 많은 법들이 있다. 남들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라고 말하긴 쉬워도 내가 지켜내기에 어려운 법들이 참으로 많다. 오늘 제 1독서에서 신명기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듣는다는 말씀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알아들으라는 말씀이며, 알아들으라는 말씀은 실천하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말씀이 실천 되지 않으면 귀로만 듣는 말씀으로 끝나는 것이고 알아들어 실천하게 되면 생명의 법이 된다는 말씀이다.

오늘 제 2독서에서 사도 야고보는 명백히 말한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순명을 뜻한다. 오늘의 복음 말씀 중 "사람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들 더럽힌다."는 말씀을 귀로만 들으면 음식을 잘못 먹고 탈이 나서 토하는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떨어질 죄인이 된다.

"말 좀 들어라!" 그러나 듣는 것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들어야 하며 그런 마음에서 율법의 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세상을 사는 것이 간단하지 않은 이유가 더불어 살아야 하는 다양함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불어 산다 함은 팔이 안으로만 굽혀지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도 굽혀질 수 있음을 알아 어깨동무하며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말 좀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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