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6일 연중 제 27 주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106일 연중 제 27 주일

많은 이들은 아담과 하와가 맨 날 지지고 볶으며 서로 미움과 애증에 얽혀 살았으리라 짐작한다. 선악과를 여자가 먼저 따먹고, 남자에게 따주었던 일을 기억하면 아담과 하와가 서로를 원망하며 갈등 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별 무리가 없어 보이지만, 성경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원수처럼 지냈다는 기록은 없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서로 미워하고 서로에게 소원했다면 인류의 역사는 바로 끝장났을 것이다. 그러니 아담과 하와가 애증의 삶을 살았을 것이란 추측은 우리네의 비좁은 속내일 뿐이다. 이 사실을 오늘 복음 말씀에 비추어 보면, 아담과 하와야 말로 하느님께서 맺어준 결혼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여 살았던 부부였다. 아담과 하와는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한다는 진리에 의해 서로의 허물을 탓하며 악다구니를 쓰지 않고 서로를 보듬으며홀로지내지 않았다. 세상을 창조하신 모든 것이보기에 좋았던하느님께보기에 좋지 않은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

바리사이파 사람들 몇몇이 예수님께 와서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먼저 그들의 생각을 말하게 하신다. 그 들에 의하면 모세는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은 허락했다” (신명 24, 1-4)는 것이다. 그런데 신명기에 나오는이혼장을 써주라는 조건은 사실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혼증서는 그 이혼증서를 갖고 있는 여성이 전남편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으며 이제 다른 사람과 결혼해도 된다는 것을 전남편이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분명한 답을 내리시며 더 깊은 차원의 결혼에 대해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창세기 1 27절과 2 24절을 연결시키시면서 하느님의 본래의 뜻에 따르려면 이혼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며, 모세가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내보낼 수 있다는 율법을 준 것은굳을 대로 굳어진 마음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그 당시 아내를 개인소유물처럼 생각해, 이혼장을 써 주기만 하면아내를 헌 신발 버리 듯 버려도 되는 것 인양생각하던 율법해석의 잘못을 지적하신다.

 

주님께서는 모세가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한 것이 결코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시며 이혼의 이유를 딱딱하게 굳을 대로 굳어진 마음 때문이라고 하신다. 사실 하느님께서는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창세 6,5) 슬퍼하셨고, “사람의 마음은 어려 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창세 8,21)이라 시며 가슴 아파 해하셨다. 굳을 대로 굳어진 인간의 속성이 이토록 하느님을 괴롭힌 것이다.

그리고 이 논쟁(?)이 끝난 다음 어린이를 축복해 주신다. 어린이들을 축복하시는 것은 어린이는 거룩한 혼인의 결실, 즉 두 남녀의 하나 된 사랑의 결실이면서 이혼의 첫 번째 희생 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어린 생명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이신다. 어린이는 하느님 나라의 희망이다. 어린이는 매우 단순하다. 무엇이든 보고 듣는 대로 행동하는 단순한 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앞에 어린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어린이는 하느님 앞에 계속적인 사랑의 관계에 있으며, 믿음의 관계, 또한 그 때문에 포기의 관계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는 이런어린이 같은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변화무쌍한 이 세상에서 참다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라도 가정 안에서 볼 수 있는 '부부'의 관계와 '부모와 자식'의 관계 에서처럼 이해관계를 떠나 조건 없이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지속적 인간관계를 필요로 한다.

본디 가정은 인간이 인생의 첫 단계부터 사랑, 신뢰, 충실 등과 같은 기본적 덕을 배우는 학교이기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믿고, 용서하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어야 한다.

우리 모두 하느님은 인류 모두를 사랑 하시는 자비로운 분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행여 많은 상처를 받고 이혼한 이들이나. 새로운 배우자를 맞아 행복하게 살겠다는 사람에게도 자비하신 하느님은 살아 계신다. 교회는 그들을 축복하고 그들 안에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살아있을 수 있게 도와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던 낙원을 그리워하고 그분과 함께 지낸 기쁨을 잃지 않으려 사랑을 살았던 아담과 하와처럼홀로지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함께 하는 이를 사모하는 것은 행복의 지름길이 되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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