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3일 연중 제 7 주일 Fr. 김두진(바오로) 강론

 

2 23일 연중 제 7 주일

어릴 때 국어책에서 읽은 의좋은 형제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추수를 마치고 형은 동생을 생각한다. 이제 막 결혼해서 필요한 것이 많을 것 같은 동생을 위해 그는 자신의 볏단을 동생의 논에 가져다 놓는다. 동생은 조카들이 많은 형님을 위해서 자신의 볏단을 형의 논에 가져다 놓는다. 이런 미담은 계속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먼저 남에게 해 주는 이런 이야기는 우리를 흐뭇하게 한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며 그들을 축복하라고 하시며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하시며 황금률을 선포하신다. 현실의 삶에서 이게 가능할까 싶다. 사실 원수는 멀리 있지 않다. 대부분이 우리와 사랑을 나누다가 서로 미워하게 되는, 그래서 애증의 관계가 되는 가족, 친구들이다. 우리가 용서해야 할 대상은 매일 얼굴을 마주치며 살아야 할 관계의 사람들이다. 오늘 용서하고 화해하더라도 내일 다시 싸울 수도 있기 때문에,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 자체가 두렵다.

 

그래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라는 말씀이 마음에 걸린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그렇게 하면 나도 하지, 다른 이들이 뛰어들면 나도 그 때 하지, 나 혼자 남들이 내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하면 마지막에 바보 되는 건 나 밖에 없을 테니, 남이 먼저 하면 나도 하지…….  사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했다면, 하느님 백성의 시작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이사야도 마리아도 없었을 것이고, 결국은 예수님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오늘날 하느님 백성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달리 생각하셨다. 그분은 그냥 시작하셨다. 온전히 하느님을 위해 그리고 하느님 백성을 위해 살기로 작정하시고, 자기 자신은 잊은 채 사랑의 길만 가셨다, 그 길이 당신 목숨을 대가로 치러야 하는 길이였음에도! 그분이 시작하셨기에, 그리고 또 다시 그분을 따르는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 모두를 위한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토대가 생기게 되었다. 그분이 먼저 시작하셨고 늘 또다시 그분의 길을 따라 걷는 이들 때문에, 하느님 백성이 존재하고 교회가 존재하고 공동체가 존재하게 되었다.

 

 

오늘 1 독서의 다윗은 놀라운 믿음의 소유자였다. 사울은 다윗을 시기 하여 죽이려 들었다. 다윗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법칙으로 똑 같이 되돌려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 해도 별문제 없었지만, 사울을 해치지 않는다. 그의 부하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 오늘 원수를 장군님 손에 넘기셨으니 이 창으로 그를 단번에 땅에 박아 놓겠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분을 해쳐서는 안 된다. 누가 감히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이에게 손을 대고도 벌 받지 않을 수 있겠느냐?” 어떤 상황이든지 하느님의 뜻을 기억했던 다윗의 믿음과는 달리 매 주일 말씀을 듣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주장에 묶이기 일쑤인 우리, 자신의 주장을 고치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여기는 우리의 믿음이 부끄럽다.

 

황금률은 그리스도 신앙인들을 바보로 만드는 계명이 아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뺨을 맞은 사람에게 다른 뺨을 내어주라는 것은 맞지 말고 맞아주라 말씀이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라는 말씀은 뺏기지 말고 주라 뜻이다. , 나는 맞는 것이 아니라 맞아주는 것이고 뺏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는 자발적 사랑을 실천하라 하신다.

 

오늘 제 2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흙으로 빚어진 아담과 하늘에서 온 그리스도(마지막 아담)를 비교한다. 첫 사람 아담은 "자연적 생명체"였고 둘째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라고 한다. 그는 우리가 비록 흙의 형상으로 아담과 같지만, 세례를 받음으로 둘째 아담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육의 사회가 만든 법칙에 따라 살려는 유혹을 받고 있지만 복음이 주는 곧 영이 주는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 자신을 미워하는 이들을 선으로 대하는 것, 그리고 자신을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하신 말씀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오늘 전례의 모든 말씀은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황금률로 귀결된다. 형님 먼저 아니 아우 먼저 하면서 서로가 바라는 대로 해 준다면, 원수도, 심판도, 단죄도, 용서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해 주는 것이 된다. 내 안에 갇혀 바라기만 하며 살 것인지 아니면 먼저 해 주며 살 것 인지를 물으며 지난 주에 이어 행복이 무엇인지 되 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