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사순 제 2 주일
나이가 들면서 점점 웃음을 잃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지난 주일에 보니 CCD 어린이들의 가슴에 스마일 배지가 달려있어 기뻤다. 웃는 얼굴 곧 Smile은 다른 사람들도 미소 짓게 만든다. 사람의 얼굴은 얼마나 다양한가?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은 독살스러운 모습으로, 분노로 가득 찬 사람은 살기가 도는 모습으로, 절망이 가득 찬 사람은 수심 가득한 모습으로, 어떤 사람은 슬픔으로 가득 찬 얼굴로 산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려면 마음이 고와야 한다.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지 여자지” 하는 노래말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는 주님의 제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이야기인데 우리의 변모를 말하고 있다.
첫 번째 독서는 아브람에게 하신 하느님의 약속과 그 둘 사이에 맺어진 계약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계약에서 짐승을 쪼개는" 예식은 계약을 위반하는 쪽이 짐승처럼 쪼개져 죽게 되리라는 상호 합의였다. 즉 계약을 위반하면 쪼개진 짐승의 모습처럼 될 것이라는 섬뜩한 표현이다. 여기서 한 가지 특이점이 발견되는데, 계약 당사자인 아브라함이 갈라진 짐승들 사이를 지나가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이 쪼개어진 짐승 사이를 지나가면서 계약 조건을 말씀하신다. 이렇게 보면 창세기 15장은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계약을 이야기한다고 보기 어렵고, 하느님의 일방적인 약속이다. 사실 하느님께서 일방적으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계약을 맺으시는 것도 아브라함의 요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일방적으로 결정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계약에 당신 스스로를 옭아매시는 하느님. 곧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이 돋보인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에 관한 이야기는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제자들에게 그분의 정체와 그분의 영광이 어떤 것인지를 알리려는 것이다. 율법의 모세와 예언의 엘리아가 예수님께서 곧 예루살렘에서 당하시게 될 사건들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9, 31) 산위에서 예수님께서는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한 인류 구원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지만, 잠들었다가 깨어난 제자들은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한 채(9,32)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모세와 엘리아의 현현만 보게 된다.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영광의 표징을 보고 거기에 안주하려고 초막을 짓자 하지만, (9,33). 하늘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9,35) 하는 소리가 들린다.
옷이 하얗게 빛났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 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 흰옷을 입었다. 그것은 거룩함의 상징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는 것 (로마13,14) 이다. 흰옷을 받을 때 “여러분들은 이제 새로이 창조되어 그리스도를 닮게 되었으니, 이 흰 옷을 받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 날까지 여러분 스스로를 깨끗이 보전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십시오.”라고 격려한다. 또한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말하고 있는데,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어좌 앞에 있고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고 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그들을 덮는 천막이 되어 주실 것이다.”(묵시7,13-17)라 한다.
오늘의 말씀을 보면, 1독서의 아브람은 후손을 얻지 못해 미래에 대한 보장이 없는 불확실한 처지에 놓여 있었고, 2독서의 사도 바오로는 감옥에 갇혀 있으며, 복음은 예수님께서는 모욕과 비난, 몰이해와 폭력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시어 수난과 죽음을 맞게 되어 있다. 그러나 아브람은 주님을 믿음으로써 주님으로부터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았고(창세 15,6) 바오로는 십자가를 원수로 여기지 않고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었다. (필리 3,18. 4,1) 세례로 예수 그리스도를 입은 우리에게 하느님은 예수님의 말을 들으라고 하신다.
하느님께서 의로우시니 아무렇게 살아도 된다는 생각은 유혹일 뿐이다. 예수님과 함께 한 제자들처럼 예수님 덕분에 누리게 될 영광만을 생각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잠들어 있어서도 안 된다. 우리의 의로움이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과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 말씀에 따라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들로서 아버지의 의로움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놓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너무 약한 탓에 의롭게 산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겠지만, 아버지 하느님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기다려 주시고 또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을 기억하고, 그분의 의로움에 우리를 내어 맡기며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히 살아가도록 하자. 그러면 2 독서에서 이야기 하듯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킬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 이다. 해서 행복의 미소를 지으며 영광스럽게 변모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