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날씨가
많이
끈적거리더니
요즈음은
습기가
덜해
덥지만
상쾌합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이면
학교에
다닐
적처럼
미시간
숫가에
나가
상쾌한
바람을
쐬면서


산책이라도
했으면
하는
생각
해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갈릴래아
호수는 미시간
호수처럼
민물임에도 바다라고
합니다.
요르단
강처럼
조그마한
물줄기들만


보다가
갑자기
둘레가
50km
되는
거대한
호수를
접하
그야말로
대단한
바다처럼
느껴졌을

같습니다.
마치
미시간
호수처럼
말입니다.

 

이번
주일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바다
근처에
있는
광야에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읽을
때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가 본당에서 잔치를 하면 오백 정도만 모여도 잔치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생각이 먼저 듭니다. 우리 본당에서 명이 모일


일은 없겠지만, 어느 모임이든지 오천명이 모인다 대단히 행사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 나누어 주셨다 전하고 있습니다. 장정만 오천 명을……..

 

시간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하느님께는 불가능이라는 것이 없다는 믿음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소설을 써보고 싶습니다.


오늘의 복음을 보면, 여기 보리빵 다섯개와 물고기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람들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요한 6,9) 라는


안드레아의 말로 빵과 물고기가 어린아이로부터 나왔음을 밝힙니.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 갔다.”


여행을 떠날 사람들이 준비해야 것을 알았을테니, 사람들은 각자가 준비한 것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안드레아가 생각한 것처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놓지 못하고 있었겠지요. 그런데 꼬마 녀석 하나가 단순한 생각으로 다섯 개와 물고기 마리를 놓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라고……기가 막힐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저런 같은 . 그것으로 무엇을 있을 같으냐? 그럼에도 구하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하느님 나라는 모든이의 나라며 혼자만 잘되는 나라가 아니고 함께 살아가는 나라임을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마음이 열려진 사람들은 사람씩


슬그머니 자기의 것을 풀어 내놓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풀어 놓고 먹어 보니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이 12 주리에 가득할 만큼 충분한 것이었다. 너무 황당한


소설입니까? 아니면 너무 불경한 이해일까요? 예수님의 기적을 믿지 말자는 말씀이 아니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이뤄 내자는 말씀입니다. 벌써


어래전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만, 한국 IMF 와서 모든 사람들이 큰일이 났다고 걱정할 때 어떤이는 아이의 반지를 빼고, 어떤 이는 자기의 금이빨을 빼어


경제 살리겠다고 금을 모은적이 있었습니다. 나라의 총체적 위기에 과연 돌반지 하나가, 금이빨 하나가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요? 그러나 그것은 나라 경제에 보탬이


되었고 지금은 그랬나 싶을 정도로 힘든 금융위기를 넘겨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먹고 사는 우리에게 먹다 남은 식이 가난한 나라에서 굶어 죽는 아이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 유행이 지난 옷을 버리는 것이 추위에 떠는


아이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리가 자원을 아끼는 것이 자연을 호하는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리가 종이 아껴 쓰는 아마존의 파괴를 막는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리는 앉아서 이렇게 안드레아가 말한 것처럼 여기 보리 다섯 개와 물고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생각만 되풀이 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길거리를 가는데 어느 사람이 구걸하고 있습니다. 머릿속으로 사람에게 내가 돈을 주면 밥을 사먹을까 아니면 술을 사먹을까? 혹시 돈으로 마약을 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 사이에 사람은 지나쳐 버립니다. 나의 이런 작은 도움이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사람은 일은 안하고, 사지가


멀쩡한데 구걸이나 하고 것일까? 가난은 나라님도 해결할 없는 문제라던데   람에게 베푸는 작은 선행이 과연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일년에 부모님께


전화 드리는 것이 과연 효도에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가족들 안에서도 우리 애들 혹은 아내(남편)에게 이렇 표현 하는 것이 과연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나 작은 것의 시작이 것의 시작입니다. 작은 것들이 것을 이루는 법입니다. 그래서 가장 단순한 것은 가장 일인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일이 됩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적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우리에게도 일어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자리에서 필요한 웃에게 있는 조그만


일조차 과연 그것이 무슨 소용이 겠습니까?하며 안드레아의 생각만 되풀이 하고 있기 때문은 닐까요? 절대로 하느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자는 것이 아니고 오천 명의


기적이 불가능한 것이라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읽은 복음에서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것은


요술 망이의 효력이 아닐겁니다. 일들이 바로 큰일의 시작입니.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무슨 소용이 있을까? 


           

                                                                                  
Fr.
김 두진(바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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