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저편에는…( Somewhere over the rainbow )

주로 청취자들의 후원금에 의존하는 공영방송

그 후원자들의 노력안에 슬쩍 스며들어 얌체족처럼 즐기는 저는,

그때마다 편치못한 마음이 되곤 하지만 그러면서도 좋은 프로그램들을 자주 많이 내보내는 그이들 때문에 오믈도,

놀랍게도 우리에게도 낯익은 앤디(Andy Williams)가 Moon River를 불러주고 있었지요.

언제나 목소리도 품격있고 그래서 때묻즈않은 고운 목곳리의 주인공이죠.

.

 

그런데 말이죠.

저는 그 할아버지가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세상사람들이 비웃던 그 노인이 아주 많이 좋아지고 그래서

그 노인을 비웃던 이들이 따라서 저를 보고도 비웃는다해도 

그래도 그 노인이 좋은걸요.

 

비웃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건 그이들의 하는 일이고 

그렇다고 

제가 그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마음까지 멈추게할 수는 없을 겁니다.

좋아하는 건 제 마음일 테니까요.

 

조롱박으로 바닷물을 주어담는다는 건 세상속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할아버지는 어리석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비웃었겠지요.

 

꼭 그 물을 퍼내고 싶다면 

큰 양수기를 몰고와서 틀었다면 

그 노인이 일년 내내 한 수고를 단 번에도 해 치울 수 있었을테지요. 그랬다면,

아마도 지나는 사람들도 비웃지도 않고 그냥 지나갔을 거구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어떤 일을 더 조금밖에 못했느냐 아니면 더 많이 이루었느냐가 가장 중요한 일이 되고 

결과로 결정되는 가치관의 세상에서는 많은 수량이 좋은 평점을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지사 ( 當然之事 ) 이어야겠지요.

 

가장 흔하고 순쉬운 예를 들자면,

어떤이가 어떤 일을 수단방법 가리지않고 도모해서 돈을 잔뜩 벌었다면 

세상은 어떻게도 그렇게 용케 소문을 아는지 그 부자를 찾아가 눈을 맞추려하고

한푼 얻지도 못하고 밥 한끼 못얻어 먹어도 괜히 주눅이 들고 아부하고싶고 그런 것이

세상풍습 아니겠습니까 ?

    

 하지만,

결과만이 아닌 그 과정을 후하게 보아주려는 사회라면 반드시,

어떤일의 결과가 가져다주는 그 수 ( 數 ) 나 그 량 ( 量 ) 의 많고적음 으로만 판단하진 않을테니까요.

 

사는 동안, 내가 

무엇이 되었느냐, 또는 어떻게 살았느냐의 두 갈래에서 어느길을 가느냐는

그 사람 고유의 선택이고 의지일 뿐이겠지요.

 

무엇을 이룬 사람의 눈으로는 과정을 주장하는 이가 

이루지 못한 것을 구실로 삼으려는 구차스런 변명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뭣을 이루었다고 하는 이의 결과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자신을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허망사로 남고마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또, 어떤 이는 돈을 크게 벌수 있는 일로 결과를 내다보면서도 그과정안에 불의하고 부정스런 내용을 보고는

기회를 내던지고 편한 마음으로 차라리 가난하게 사는 경우도 실제로 있음을  봤습니다.

 

예수님시대 때 

부자청년이 선택했던 길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교훈이 담겨있는 좋은 한 예입니다.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혼란에 빠져서 소용돌이 치고있던 암울했던 시절,

이씨왕가의 마지막 황제였으며 

고종과 민비의 아들이었던  순종.

어지러운 시간에 태어나 불운하기도 했겠지만,

 

자신의 위험에 처한 공포감과 조금 더 황제로 살아남기 위해 

침략자들의 이로움을 도모하려는 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적의 공관으로 피신하며 안일을 도모한 것같은

모습이 후손들의 눈에 치졸하고 추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한편,

요즘엔 오히려 많은 이들에의해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을 성경의 겉포장도 구경조차한 일도 없었고

그렇다고 어느방에 편하게 앉아 

창세기, 첫장도 배운일도  없었음에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 예수 ) 냐, 아니면 ( 내 육신의 목숨 ) 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절대절명의 긴박한 시각에 망설임 조차도 없이 단호하게,

” 예수요. ” 하며 내목숨을 선뜻 내어놓을수 있었던 믿음의 순교자선조들의 삶.

 

많은 것들을 저에게 가르쳐주며 또 묻고 있어보입니다.

 

 

 

눈을 감고 달위에 걸터앉은 저는,

무지개가 보이는듯 합니다.

 

 ”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

There’s a land that I heard of once in a lullaby

Somewhere over the rainbow skies are blue

And the dreams that you dare to dream

Really do come true…….

 

저 무지개 너머 저편에는 꿈이 있습니다

이루어질 것만같은 꿈이 보이네요.

꿈이 있는 이는 행복할 것입니다. 

꿈은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담으니까요.

희망은 맨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것이라고 어떤이가 책에 썼더군요.

희망은 절망에 빠진 나를 구해주려 끝까지 살아남아 나를 기다려주는 좋은 친구입니다. 

 

초생달에 앉아 저는,

저 강물에 낚시줄을 내려봅니다.

 

낚시줄에 저의 그릇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잡동사니들을 하나씩  풀어 저강물에 띄워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내안의 허망한,

욕망, 교만, 위선, 아집, 나태, 분노……. 모든 잡동사니 쓰레기를 떠나보낼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성령님께 ” 저의 빈그릇에 오셔서 저를 가득 채워주십시오 ” 

기꺼운 마음이되어 노래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저강물에 나쁜 마음을 다 떠내려버릴수 있다면 아마도,

저의 낚시줄은 그 강물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님의 ( 평화 )와 ( 사랑 )을 건져 올려줄지도 모릅니다.

 

 ” We are many parts, We are all one body. “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설사 각각의 여러 다른  모습으로 각각 다른곳으로부터 모여왔을지라도 

주님안에서 (하나)를 이룰수 있을 것입니다.

 

포도나무안에서 머무는 가지들이 되어 한몸을 이룰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꿈을 낚시로 건져 올릴 수 있을 때까지,

(희망)을 버리지않고 이 별위에 머물려고 합니다.

 

바로 그순간이었습니다.

 

요란한 경적소리에 저는 그만 눈을 뜨고 말았습니다.

 

새벽이 되어 일찍 출근해야하는 이웃 젊은이들이 

서둘러 떠나느라 차의 엔진을 걸며 요란스레 굴었습니다.

 

(희망)도 못건지고, (꿈)도 아직 건지지 못한채인데 

눈을 뜨고야 말았습니다.

 

아마도 저의 영혼이 가야할 그 길은 아직도

멀고도 까마득하다 는 걸, 저의 하느님께서 일터로 향하는 이웃을 통해

저를 깨우치려 하신 것같다고 여겨지는 그런 아침입니다.  

 

그래도, 눈을 뜨고 현실로 돌아왔을지라도  저는,

 생시에도 그 꿈을, 그 희망을 결코 내려놓지 않을 작정입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