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현양 대축일을 앞두고…….

십자가 현양 대축일을 앞두고…….

 (914월요일은
십자가 현양 대축일입니다.)

 

십자가상에
한 사람 있네. 왜 죽으셨는지 말해다오.

십자가는
치욕의 상징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치욕을 당하셨습니다.
죽으셨을까? 원래 십자가는 옛날 로마나 유대아,
이집트등
지중해 연안지방의 나라에서


극악무도한 죄인들이나 국사범들을 처형하던 사형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되시고난 후, 사람을 죽이던 도구였던 십자가의 의미가 사람을 죽이는


형틀에서 사람을 살리는 은총의
도구로 바뀝니다. 예수님이 받아들이신 그 십자가는 죽음의 도구였고,
그분의 마지막 힘을 빼앗아간 도구였으며, 하느님의 아들을


서너 시간만에 죽게한 죽음의
도구였습니다. 그런 십자가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다가 부활하시면서, 생명을 전달하는 도구로 변했음에도 사람들이


십자가가 생명의 도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 삼 백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 부터이니 우리 인간의 아둔함이 서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겪었던불 뱀 사건을 회상하시면서, 나도 그 길을 가야 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올바른 의미를 알아들으면 영광의 상징이 되겠지만, 그 십자가의 의미를 알아듣기 전에는  반드시 겪어야 하는 치욕의 과정이 있다는 예수님의  선언이


참으로 무겁습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십자가는 참혹한 형틀이 아니고 우리 인생에 참다운 의미를 부여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주님의 십자가는


상상도 할 수 없고, 갈바리아 산상에 우뚝 세워진
십자가가 없었다면 인류 구원이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니 모든 사람들을
그토록


사랑하셨는데, 왜 죽음이 그분을 가로막았을까요?

십자가는
그래서 의문 투성입니다. 신학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또 이해하는 것은 이론적이지만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려면
의문에 의문 투성입니다. ,,?

 

911을 기억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특히 뉴욕에서 살때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많은 이들은 아직도 911
슬픔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9월이 되면 쌍둥이 빌딩이 보이던


모든 다리에는 어김없이 많은 이들이
나와 촛불을 켜들고 희생자들을 기억합니다. 그 때에 다친 사람들은 아직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멀쩡하게 출근하겠다고 웃고 나간


아들이, 눈에 넣어도 안아플 예쁜
딸이 그들과 상관없던 폭력에 돌아오지 못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사람들 을 구하려던 경찰관들과 소방대원들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습니


.
서류미비자라고 부르던가요? 이 땅에서 살기위해 밤과 낮을 바꿔가며 열심히 일해도 자녀들이
올바른 교육을 받지 못하고, 늘 가슴 졸이며 이방인으로 살아야하는 이들이


외칩니다. , , ?


건강만큼은
자신있다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앞뒤 안 보고 열심히 일해 이제는 조금 살만하다 싶었는데
청천 병력같은 병으로 죽음 앞에서 외칩니다. , , ?

 

십자가는
이론이 아니기에 신학으로 알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의미는 온 몸으로 알아내야 합니다. 목에 걸고 있는 십자가인양 우리의 십자가가 신앙의 액세서리가


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십자가는 의문이고 치욕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치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는 십자가를 목에 걸 자격도 없습니다. 그저 말로만 하는 십자가의


의미가 과연 사람들에게
기쁜소식 아니, 부활을 기다리게 하는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자문해 보니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저 높이 들려진 십자가 앞에 엎드려


의미를 알게 해달라고 조르는 수 밖에 없나 봅니다.

 

, , ? 라고 외치는
이웃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답답해 할 수 밖에 없는 내가 부끄럽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아버지 왜 저를 버리셨습니까?”


라고
외치는 그 들의 울부짖음에 함께 달리신 그분의 치욕과 부끄러움, 그리고 고통과 어려움만 바라볼 뿐, 어찌 동참해야 하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저의 무지가 답답합니다.

 

자동차 앞에 걸려 있는 묵주와 십자가를 통해 천주교
신자임을 나타내려 하는 것이라면?”라고
외치는 이웃의 울부짖음이 더 이상 시끄러운 소음이 아니고, 우리 가슴을


후벼내는 그분의 목소리로 들어야
합니다. 자동차에 달려있는 십자가의 무게가 가벼울지언정 의미 만큼은 소중하고 귀하며 무거운 것이어야
합니다. 귀에 달려있는 십자가,


목에 달려있는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없다면 차라리 귀에서, 목에서 십자가를 걷어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는지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위해 목숨을 내 놓을만한 용기와 의지를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십자가의


의미에 욕되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 그것이
자동차 앞에도 걸려있고, 우리들 목에도 걸려있고, 우리
귀에도 달려있지만, 그 의미는 우리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 , ? 라고 외치는
이들아버지 왜


저를 버리셨습니까?” 라고
외치는 이웃 안에 숨어계신 그분의 외침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그 치욕의 십자가가 승리의 십자가가
되었고 구원의 십자가임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면 말입니다.

 

보라 십자가 나무 여기에 세상의 구원이 달려있네!”

 

                                       – Fr. 김 두진(바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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