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김두진(바오로)신부님 강론

6 6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Corpus Christi)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 축일이다. 우리가
복음에서 들은 대로 예수님은 수난 전날 저녁 제자들과 함께 해방절 식사를 하시던 중 식탁에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신다
. 또 포도주 잔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후,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라고 말씀하심으로 계약을 맺으신다. 우리의 일상에서 계약은 계약 쌍방이 미래의 행동 방식을 약속하는 행위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몸이라고 말씀하신 빵을 먹게 하고
, 당신의 피라고 말씀하신 포도주를 마시게 하시면서, 쌍방의 미래 행동 방식을 정하셨다. , 그 빵을 먹고, 그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 안에 예수님이 살과 피로
살아 계셔서 예수님의 삶이 그분의 몸과 피를 받아먹는 사람들 안에 행동하게 만든다는 약속이다
. 그러므로
그 빵을 먹고 그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은 예수님이 지니셨던 인간관계와 그분의 생명을 살겠다고 약속하며 계약을 맺는 것이다
.

 

하느님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을
것을 원하신다
. 사랑은 자유롭게 응답하는 것이지 강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군림하고, 강요하고, 명령하는
것은 횡포이지 사랑이 아니다
. 어떻게 보면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고 안 하고는 우리의 선택일
수도 있다
.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랑에 응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성체적인 삶이 될 수 없을 것이다
.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에게 베푸시는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 베푸는 일을 자유롭게 실천 해야 한다.

 

예수님은 유대교 기득권자들처럼, 당신의 위신을
찾고
, 당신 스스로를 높이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죄인으로
낙인 찍힌 사람들과 어울리며
, 그들의 죄의식을 없이 하셨다. 그러나
자기 자신만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 자기가 손해 본다고 생각할 것이고, 욕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또 자기 권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일에 구애 받지 않으시고 당신의 일을 굳건하게 해 나가셨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죄인과 세리와 어울리시기에 사람들로부터 비난 받았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유대교 당국이 죄인이라 낙인 찍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하느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당신의
몸짓으로 보여주셨다
. 그렇다! 하느님은 아무도 버리지 않으신다.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와서 나를 따르라.”(마르 10,21)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가진 것이 재물이든, 위신이든, 베풀고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일을 가로막는 것은 모두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는 말씀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

 

성찬에 참여하여 예수님의 몸인 빵을 먹고, 그분의
피인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우리의 인간관계와 우리의 삶에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 성찬에서 변하는 것은
빵과 포도주만이 아니고
, 그 빵과 피를 받아 모시는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 성체성사로 우리 자신을 보는 우리의 시선도 달라질 수 있도록 그분의 몸과 피가 우리 안에 활동 하시도록 성령께
마음을 열어야 한다
. 빵이 예수님의 몸이 되고, 포도주가
그분의 피가 되듯
, 우리도 내어주고 쏟는 사람이 되도록 변해야 한다.
한 생명이 한 순간에 자라고 한 순간에 배워 다 알아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성찬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면서 시간과 더불어 이 변화가
우리 안에 일어날 것을 그분께 또 성령께 빌어야 한다
.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어 마시는 이
성찬에 참여한 우리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 스스로를 내어 주고 쏟으신 예수님의 삶이 우리
안에 서서히 실현되게 하는 성찬이 되도록 해야 한다
. 그래서 성찬은 빵도, 포도주도, 우리 자신도 모두 변하게 하는 하느님의 일, 거룩한 일 곧 성사(聖事)
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