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를 두 개의 비유로 설명하신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는 땅에 뿌려진 씨와 같다고 하시면서, 씨를 뿌려
놓으면,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 듯, 하느님의 나라도
사람들에게 선포되면, 그들이 자유롭게 그것을 자라게 한다는 말씀이다.
또 하나의 비유는 겨자씨의 비유이다. 땅에 뿌려질 때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나서는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나무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는 말씀은
하느님의 나라를 사람이 수용할 때는 보잘것 없지만, (아주 작은 씨앗에 불과 하지만) 그것이 그 사람 안에 성장하여 자리 잡으면, 주변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말씀이다. (새들이 날아들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두 개의 비유 말씀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서
스스로 자라고, 그것이 자라면, 주변에 은혜로운 혜택을 준다는
말씀이다. 뿌려진 씨는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한다. 씨는 뿌려져야 한다. 그
뿌린 씨를 받아들이는 땅은 성령께서 가꾸신다. 해서 우리의 노력은 보잘것 없지만(그 작은 씨앗에서), 성령에 의해 생각지도 못했던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을 만큼’ 큰 결과가 나온다는
말씀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들을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15,9) 그렇다! 예수님이 사람들 안에 뿌린 씨는 사랑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사랑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또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사람들 안에 자라서 열매를 맺으면,
사람들이 그것을 수확하여 혜택을 받는다는 말씀이다. 사랑은 주변의 모두, 하늘의 새까지도 기쁘고 행복하게 만든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도 가르치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2-43) 우리 안에 자라야 하는 하느님의 나라는 사랑으로 섬김을 실천하는 데에 있다는 말씀일 것이다. 사실 율사들과 사제들은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기 위해 생긴 이들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섬김을 잊어버리고, 이스라엘 안에 군림하였을
때, 함께 계시는 하느님은 감춰지고, 지켜야 하는 율법과
바쳐야 하는 제물 봉헌 즉 의무만 남게 된다. 그리고 그 의무를 지키지 못한 사람들은 죄인이 되고, 그러면서 예수님 시대의 많은 이들의 믿음 안에서는 하느님은 인간을 벌하는 분으로 곧 인간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 이것은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 아니고 하느님 나라를 가리는 가라지인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뿌리지만, 하느님의
일이기에 하느님이 땅을 비옥하게 만드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다. 우리가 뿌려야 하는 씨는 하느님 나라의
씨앗으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의 씨앗이다. 바울로 사도는 그 사랑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고린 13,4-5). 우리가 뿌려야 하는 씨앗은 하느님 사랑의 씨앗이다. 참고
기다리며, 성을 내지도 않고, 비난하거나 성토하지도 않는
사랑의 씨앗이다.
어릴 때의 기억으로 농사 중에 힘든 것이 모내기와 피(가라지) 뽑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두 가지 일 모두 땡볕에 하루 종일 허리
숙이고 심고 뽑고 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다. 우리가 고생하며 심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 즉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뿌리는지,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사랑의 반대 성령의 반대인 가라지를 뿌리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느님의 씨, 사랑의 씨는 그분께서 키우시고
열매 맺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