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진(바오로)신부님 연중 제 24 주일 강론

 

 

9 11일 연중 제 24 주일 복음 묵상

예수님은 많은 것들을 비유를 통해 가르치셨다마르코 복음은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하지 않으셨다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4,34)라고 기록할 정도다예수님께서 말하신 비유는 어렵지 않다당시의 사람들의 생활 안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을 통해 말씀하신다오늘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세 가지 비유는 되찾음의 기쁨을 이야기한다예수님의 첫 번째 비유는 목자에 대한 것이다. 양 떼와 일상의 삶을 함께했던 목자는 양들이 좋은 풀을 뜯도록 안내하고더위에 지치거나 아픈 양을 걱정하고 돌봐 주는 사람이다이런 목자에게 잃었던 양을 되찾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두 번째 비유는 집안을 청소 하면서 정성을 다해 은전을 찾은 여인도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하고 기쁨에 겨워한다세번째로 되찾은 아들의 비유는 복음서의 그 어떤 비유보다도 하느님과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먹고 즐기자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하느님은 되찾고 기뻐하신다사실 잃었던 것들은 모두 하느님의 것이었다있어야 할 곳에서 떠나 다른 자리에 있건가던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접어들었건하느님 앞에 있어야 했지만, 하느님을 피해 어디론 지 사라진 것들이다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것이 회개이다회개의 바탕은 자비의 하느님 이시다하느님은 잃은 양을 찾는 목자처럼 온 집안을 샅샅이 뒤져 은전을 찾아내는 부인처럼집 떠난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다그 분은 애써 찾아 나서고인내하면서 기다리고되돌아온 이들을 기쁨으로 맞아주는 분이시다.

   

1독서는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계약의 판(율법)을 받기 위해 40일간 단식기도를 하고 있는 동안 산기슭에서 벌어지는 금송아지 사건을 전한다백성들은 아론에게 앞장서서 그들을 이끌 보이는 신을 만들어 달라 요구하고 결국 계명을 어기고 모은 금붙이로 풀을 뜯는 송아지 상을 만들어 그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 두번째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자기 스스로 첫째가는 죄인이라 고백한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박해하여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이었지만, 인내로 대해주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된 몸이다. 이처럼 변덕이 심하고 실수투성인 인간의 모습과는 달리 충실하신 하느님의 자비로우심이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돋보인다.

 

세번째 비유 돌아온 탕자에서는 작은 아들과 큰아들이 나오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되돌아온 작은아들을 반기는 아버지의 모습과 그것을 못마땅히 여기는 큰아들을 설득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탕자라 일컫는 작은 아들은 세상의 모든 기쁨과 쾌락을 누렸지만종내에는 불결한 짐승이라 생각했던 돼지나 먹던 사료를 먹으며 아버지를 기억해낸다즉 하느님을 떠난 인간의 비참함을 말하고 있다그런 아들은 아버지께 돌아갈 것 (회개)을 결심한다사실 하느님을 등진 인간은 죽은 몸이고 하느님께 되돌아간 몸은 다시 사는 몸이다죄는 죽음을 초래하는 병이요 회개는 영원한 삶을 살게 하는 명약이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주십시오라 고백하려는 아들에게 아버지의 반응은 감동적이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우리가 하느님께 돌아가는 데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사실 아버지를 슬프고 힘들게 한 것은 사랑해 줘야 할 사람이 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그런데 그 아들이 누추한 모습이지만,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하느님을 떠나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불결한 짐승 돼지나 먹던 사료를 먹고 비참하게 살면서도 세상은 원래 이렇게 비참하고 힘든 것이라 믿으며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 용서 받지 못할 죄는 없다. 사람의 죄가 하느님의 사랑을 능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언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보다 인간의 죄가 더 클 수 없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신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큰아들의 투정이다큰아들은 자기의 아우를 가리켜 저 아들이라 부른다이는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의 아들은 될지는 몰라도 내 아우는 될 수 없다는 뜻이다그러나 아버지는 너의 저 아우라고 함으로 그 둘이 분명 형제임을 밝히신다.

   

아버지는 잔치를 베푸신다그렇다고 화가 나서 들어가지 않는 큰아들이 옳은 것은 아니고베풀어진 잔치에 죄송해서 못 들어가는 작은 아들도 옳은 것도 아니다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 모두가 잔치에 초대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그런데 이 초대받은 잔치에 들어와 보니 거기엔 의외로 우는 사람도 있고 소외된 사람도 있으니 예수님께서 왜 소외된 이웃들과 더 가깝게 지내셨는지 이해가 된다. 잔치에서 나 혼자 잘 먹고 마시면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편협한가? 더불어 초대받았으니 함께 더불어 먹고 마셔야 하지 않겠는가그러나 작은 내 안에 잠기면 잔치의 기쁨은 보지 못하고 답답한 억울함을 간직한 채슬픔을 살아갈 뿐이다큰 아들작은 아들 우리 모두 잔치에 초대 받았으니 아버지의 말씀처럼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