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 연중 제 26주일 복음 묵상
오늘 우리는 복음을 통하여 부자와 가난한 나자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라자로는 그리스어로 도움 받을 길이 없다는 뜻이지만, 히브리어 이름으로는 엘사자르 (El-azar)로 하느님이 도우신다는 뜻이 된다. 복음에 나오는 나자로는 이름처럼 살아생전 누구에게도 도움 받을 길이 없는 삶을 살다가 죽어서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19) 재미있는 사실은 부자는 이름이 없고 온몸에 종기가 난 거지는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다. 즉 이름 없는 무명의 부자와 이름 있는 유명한 거지의 대조다. 어떤 부자라고 지칭되고 있는 그는 비록 화려함과 즐거움으로 살아가지만 그가 방탕하고 나쁜 사람이라 하지 않는다. 거지 라자로도 지독한 가난으로 비참하게 살았지만, 그가 훌륭한 사람이었는지, 착한 사람이었는지도 명확치 않다. (20-21)
그러나 어떤 부자와 나자로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바로 이 선으로 인한 분리와 차단은 그들 사이에 그 어떤 상호 관계나 교류, 교감도 불가능하게 한다. 바로 대문 앞에 존재하던 라자로의 고통을 부자는 매일 보지만,
그 고통을 공감하지 못한다. 심지어 부자는 죽어서도 라자로에게 직접 말을 걸지 않는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주십시오.”(24) 라며 아브라함에게 부탁할 뿐이다. 결국 지상에서의 선 긋기는 저승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그들 사이에 “큰 구렁”(26)을 만들었고, 그 큰 구렁이는 큰 고통 중에도 도움 받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었다.
본문의 후반부는 무엇이 사후에 그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는지를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인물들이 등장 하는데 곧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언자들이다. 아브라함의 등장은 부자와 라자로가 모두 유다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알리고, 동시에 그들이 지켜야 할 계약을 암시한다. 모세오경의 여러 구절은 같은 동족을 돌봐야 할 책임을 율법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특히 신명기에서는 “너희 동족 가운데 가난한 이가 있거든 가난한 그 동족에게 매정한 마음을 품거나 인색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그가 필요한 만큼 넉넉히 꾸어 주어야 한다. 너희 마음에 비열한 생각이 들어 괄시하고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신명 15,7-9)고 선언한다. 부자는 바로 이점을 무시했고 따라서 죽은 후에 부자가 고통 속에 지내게 된 것은 그가 부자여 서가 아니라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 즉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었던 계약과 그에 따른 율법을 실행하지 않은 이유였다. 가장 큰문제는 ‘하느님과의 계약을 무시한’ 죄였다.
부자는 살아있는 자기 형제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주기를 간곡히 원하지만,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이 분명히 전달된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31절)
복음의 부자가 누렸던 화려한 일상은 제1독서에 더욱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아모스 예언자는 기원전 8세기 북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던 극심한 물질주의와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를 비판하면서, 사치와 문란함으로 야기된 당시의 사회악과 부조리를 고발한다. 상아로 만든 침대와 안락 의자, 넘치는 음식들, 환락을 부추기는 음악, 값비싼 술과 요란한 치장들…. (아모 6,4-6 참조) 모두 인간의 본성을 만족시키는 요소들이지만, 이런 것에 매이고 중독되다 보면 국가와 사회가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6) 상태로 의식이 마비되고 만다. 국가와 사회, 타인에 대한 관심을 상실하게 된 이유는 하느님에 대한 관심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제1독서에 나오는 걱정 없이 사는 자들과 반대되는 삶을 사는 이들을 제2독서에서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규정한다. 그들은 상아 침상과 안락의자에서 일어나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는 이들이고 믿음을 위해 훌륭히 싸우는 사람들이며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이다
(2독서참조)
사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은 부자일지 모르다. 생명, 시간 건강, 이웃, 자연, 가족,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은 이름 없는 부자가 된다. 부자는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루카 12,21)이라고 예수님은 이미 말씀하셨다. 즉 하루 전체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지만 하느님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부자는 재산이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 자기 이외에 다른 사람과 하느님에게 인색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오늘 복음에서 등장하는 이름 없는 부자일 뿐이다.
결국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 하는 사람은 부자요, 이웃에게 나눔의 삶을 사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다. 부자는 항상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늘 부자로 살지만, 가난한 이는 가진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해 나누기에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비록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늘 남을 위해서 봉사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생활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요, 정말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지만 늘 자기만을 위해서 살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인색한 삶을 산다면 어리석은 부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 덧붙여 너와 나를 가르는 보이지 않는 선까지 그어져 있다면, 우리는 지옥의 삶을 선택해 살아가는 불행한 신앙인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