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8일 연중 제 22 주일
신부인 나는 늘 앞자리에 앉는다.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초대를 받아 가도 내 자리는 늘 앞에 있다. 사진을 찍을 때도 중앙에 자리해야 한다. 뒷자리나 옆자리나 뒷자리로 가 사진을 찍을라 치면 욕먹기 십상이다. 사실 늘 앞자리나 중앙에만 서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서로 윗자리에 앉으려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끝자리에 앉아라." 끝자리에 앉는 이유가 앞자리로 올라가기 위해서라면 그것도 웃기는 이야기다. 만약에 윗자리로 올라가려고 끝자리에 앉았는데 주인이 아무 소리 안하고 계속 거기에 앉아 있으라 한다면 얼마나 초라해 질까? 그런데 실상 올라가기 위해 내려가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제1독서의 집회서의 말씀은 겸손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 주님의 권능은 크시고 겸손한 이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가장 지혜로운 덕목인 겸손에 대해 말하지만, 자만심의 씨가 마음 안에 뿌려지면
남들 위에서 자기를 드러내려 하고 자기가 잘났다고 하기에 겸손은 사라진다. 하느님께서는 겸손한 이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니 겸손은 하느님의 자비와 이웃 사랑에 대한 중요한 덕목이고,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창틀과 같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총애를 받으려면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지혜를 갖추고 온유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복음에서는 바리사이의 잔치 집에 초대를 받으신 주님께서 함께 초대받은 이들과 초대한 주인에게 겸손과 온유를 통하여 천상잔치에 참여할 자격을 얻으라고 하신다. 예수님과 함께 초대받은 이들은 바리사이인이다. 예수님은
이미 그들에게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 받기를 좋아한다.”(루카 11,43)고 지적 하셨다. 그러나 이직도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구약의 잠언서의 말씀을 인용하신다. “임금 앞에서 잘난 체하지 말고, 지체 높은 이들 자리에 서지 마라. "이리 올라오게!"하는 말을 듣는 것이 귀족들 앞에서 하대 받는 것보다 낫다.”잠언 25, 6-7
어느 모임에나 상석이 있기 마련이고, 거기로 안내되는 이들은 다른 이들에 비해 더 높고 중요한 존재로 여겨진다. 예수님은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하신다. 모두가 오르려 경쟁할 때 오히려 내려가라는 말씀이다. 어디나 끝자리가 있기 마련이라면 누군가는 채워야 하는데 그곳이 겸손한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라 말씀하신다.
사실 내면이 튼실하지 않을 때는 자리가 자기를 나타내는 것이라 착각하기에 타인에 의해 밀려 끝자리로 가게 되면 몹시 불편해 한다. 반면 자신의 내면이 튼튼한 사람에게 자리의 높낮이는 큰 의미가 없다. 윗자리도 끝자리도 개의치 않기에 자연스럽게 스스로 끝자리를 차지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끝자리를 스스로 차지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스스로 끝자리를 차지하셨지 않으셨는가?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하시며 주제가 자리다툼에서 초대손님으로 바뀌어 진다. 잔치를 베풀 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회의 끝자리에 있던 가난한 이, 소외 된 이들을 초대하라고 하신다. 그들은 제 힘으로 보답하지 못해도 대신, 그들의 보호자 하느님께서 친히 보답을 해 주시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세속적 시각으로만 그들을 보지 말고, 그들 안에 계신 하느님, 그들 어깨에 손을 얹어 그들을 보증해 주시는 하느님을 보고 초대하라는 것이다.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작고 낮은 이들을 감싸 안음으로 우리에게 쏟아질 하느님의 진정 어린 감사는 몇 푼 축의금이나 으쓱함 정도의 보상과는 차원이 다른 행복이 될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을 덜 사랑하면서 낮은 이들을 높이 올려주라 하신다. 출세지향인 현세의 삶을 살면서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부단히 자신을 낮추고 겸손과 온유를 추구하며 보답을 바라지 않고 나누는 이들은 이미 혼인 잔치의 주인공이 된다. 세속적 견지에서 끝자리는 어느새 신랑이신 예수님이 머무르시는 첫 자리가 되어있다. 그런 그리스도의 곁을 차지한다는 것은 외적으로 보여 지는 끝자리나 낮춤에 그치지 않고, 영혼의 진실한 겸손과 낮춤으로 이어질 때 진정성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 말씀은 사실상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이 안식일에 일을 하는지를 시험하기 위한 자리였다. 수종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치유해 주시고 나서 하신 말씀이다. 자기를 올가미에 맬 궁리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쯤 되면 왜 예수님께서 높은 자리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셨는지 이해 된다. 그 잔치에 초대 받은 사람들은 이해득실의 관계로 와 자기가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해 준 것, 내가 도운 것, 그러나 사랑은 이해관계가 아니라 베풂이다. 내가 베푸는 사랑은 보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은 기쁨이어야 하는데, 자발적인 내어 줌은 우리게 기쁨이 된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늘 낮은 곳에 머무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자신을 낮추고 내려 갈 때, 꼴찌가 첫째 되듯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높이 들어 올려 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