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3 주일 복음 묵상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를 들을 때 마다 여러 가지 느낌이 드는데, 세월에 순응치 않고 청춘이라고 억지 부리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드는가 하면, 나이를 먹어간다고 실망하지 않고 의기소침하게 살지 않으며 오히려 활기차게 살려는 긍정적이고 극적인 삶의 자세 같아서 좋게 보이기도 한다.
오늘 복음은 성전의 아름다움에 사람들이 감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돌들이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를 내리신다. 결국 아무리 아름답고 아무리 강해도 끝이 있다는 말씀일 것이다. 뭐든지 마지막이 있어 그 때가 되면 나뭇잎도 떨어지고, 성전도 허물어지고, 사람이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모두 죽는다.
연중시기가 끝나가는 이때에 우리가 듣는 종말에 관한 이야기는 오히려 영원을 생각하게 하고 지금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왜냐하면 신앙인은 종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언제나 새로운 생명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끝을 넘어 새로운 세상이 있는 것처럼, 죽음을 넘어 생명이 있는 것처럼, 새롭게 주어질 생명에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 희망은 우리의 믿음에 바탕을 둔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뒤 부활하신 것을 믿는 이들에게 종말은 단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성경은 종말과 함께 희망을 약속한다.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그 약속은 아직까지도 유효하기에 희망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1독서) 그리고 그때에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복음)
아름다운 성전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에게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 사람들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하며 우리들도 궁금해 하는 언제, 어떤 징후가 보일지 등의 질문이다. 이에 예수님은 거짓 메시아의 출몰, 전쟁과 반란,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에 대해 미리 예고하신다. 여기까지 보면 꽤나 두렵고 험한 재앙들이긴 하지만 인류나 민족 전체를 대상으로 닥칠 일이라 각 개인으로서는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마 세상의 많은 재앙 중에 여태껏 괜찮았으니 이번에도 어찌 비켜나가지 않을까 싶은 막연한 기대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실 "이 모든 일에 앞서" 박해와 심문, 미움과 죽음까지 겪으리라 하신다. 그것도 가장 가깝게 지낸 가족, 친척, 친구들에게 등 돌림 당하고 죽게 되다니 천재지변이나 전쟁 예고보다 더 우울하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예수님께서 제시해 주시는 대응책은 의외로 단순하다. 지극히 원론적이다. 뭔가 더 특별하고 확실한 방법을 콕 집어 주셔야 할 것 같은데 그저 "인내"하라 하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인내 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지 싶다. 꾸준히 주어진 일상을 채워 나가며 십자가와 고통을 받아들이다 보면, 박해도 증언의 기회가 되고 지혜와 언변도 주어질 것이다.
제1독서에서 예언자는 "다가오는 그날"(말라 3,19)에 대해 선언한다. 불붙는 날이 거만한 자와 악을 저지르는 자를 불살라서 뿌리조차도 남기지 않을 것이라 한다.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말라 3,20)시며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약속하신다.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은 갑작스럽게 생겼다 사라지는 일회성 감정이 아니다. 경외는 지혜의 산물이며 그분을 알아 모시는 항구하고 충실한 관계성의 열매다. 악행을 거듭할수록 악에 무디어져 더 큰 죄를 쌓아 가듯이,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쌓이고 쌓여 덕인 줄도 모르게 그의 인성이 되고 영성이 쌓여간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형제들을 위해 자기들이 보여준 모범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면서 권고한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 이 특별할 것 없는 권고는 사실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근간이 된다. 각자 받은 고유한 은사에 따라 소박하고 충실하게 개인의 소명을 채워가는 것을 의미한다. 일상을 충실히 채워갈 때 헛된 허세나 기만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특별할 것 없는 "지금 여기"에서 보물을 길어 올리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종말이 언제 올지,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내게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그날"이 우리의 일상 가운데 급습하리라는 것만 말씀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따름이다. 지상에서 허락 받은 삶을 나름 채워가던 모습 그대로 종말을 맞이할 것이고, 또 그 모습에 맞은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그래서 종말이 온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충실히 하느님을 경외하며 감사와 사랑과 정의와 자비로 영혼을 채운 이들은 그 모습대로 주님을 맞이해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회개를 미루고 탐욕과 욕정과 이기심을 채우느라 급급하던 이들은 사람의 아들이 오셔도 만족을 모르고, 더 채우고 더 쌓고 더 즐기려 아웅다웅 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내려지는 징벌이 아닐까 싶다.
"그날"이 오기 전에도, 또 "그날"이 온 뒤에도 하느님과 함께 행복한 우리였으면 좋겠다. 십자가와 고통을 껴안은 채로 하느님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면 "그날"은 두려움으로 맞이하게 될 날이 아니라, 이제껏 간직하고 누린 그 행복이 영원으로 연장되는 교차점의 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