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진(바오로)신부님 대림 제 4 주일 강론

 

12 18일 대림 제 4 주일

대림 초 네 개에 불이 모두 켜졌다주님이 오실 때가 거의 다 이르렀다이와 함께 우리의 기다림도 충만해져 간다오늘 제1독서에서 주님은 아하즈에게 표징을 청하라 하신다.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아무것이나'란 말씀에는 이미 무엇이라도 보여주실 수 있는 그분의 전능함이 있고 주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는 표징이 이미 마련되어 있음을 뜻한다.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 이라 하리라.”오늘 미사의 말씀들 안에 무려 네 차례나 이 구절이 반복되어 진다반복은 강조와 집중의 의미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육화의 신비에서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표징이기 때문이다. 성탄에 가까워질수록 전례는 우리를 더 단순하고 집약된 말씀으로 깊고 심오한 신비로 이끌어 준다.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아하즈는 짐짓 겸손을 가장해 표징 요청을 거부했지만 주님께서 몸소 표징을 주신다고 하신다주님 친히 동정녀 몸에 잉태되고 세상에 오심으로 임마누엘이 되시어, 하느님 스스로 표징이 되실 것이다.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로마 1,1) 받았음을 밝힘으로써사도인 자신의 정체성을 복음에서 찾는다.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로마 1,2-3). 즉 그가 말하는 복음은 강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으로 예수님은 이미 하느님의 약속으로 성경에 기록된 분이라는 뜻이다결국 말씀은 예수님을 향하고 있다.

   

성경에 능통했던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사제들이 예수님에 대한 성경의 메시지를 왜 알아듣지 못했을까? 안타까운 일이지만이 역시 이사야 예언서에 이미 예견된 미래였다(이사 6,9-10 참조). 말씀이신 분은 사람의 자기 중심적이고 얕은 지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말씀의 완성을 통해 세상에 드러내셔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요셉이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 경위를 전한다요셉이 마리아와 파혼하려 결심한 것은 마리아에 대한 사랑과 염려호의에 의한 결정이었지만그의 꿈에 천사를 보내신 주님의 개입으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게 된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고민의 실타래가 풀리면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한다.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성경은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마태 1,22)라고 전한다. 요셉의 새로운 결단은 마리아에 대한 오해가 풀렸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말씀"에 대한 그의 경외심도 간과할 수 없다이스라엘의 모든 경건한 이에게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약속이다다윗 자손으로서 의롭고 경건한 요셉에게도 역시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했다.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임으로 자기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것이다요셉에게 닥친 일은 믿음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고믿음이 없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불가사의 한 일이다그런데 성경은 그에 대한 어떤 해명이나 설명이 없다예수님의 탄생은 이렇게 보통사람과는 달랐다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다. 물론 마리아의 “보십시오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한 순명도 기억해야 한다분명한 것은모든 것 다 설명해 주고 보여준 후에 믿으라고 하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사실 확인에 불과하다믿음은 바로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그 빛을 발하게 된다요셉이 보여준 것처럼 내 뜻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다.

   

하느님의 선물인 구원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다그리고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인간의 협력이 필요하다. 주님께서는 인간과 더불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신다그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시는 것이기에 인간의 자발적 응답이 필요하다이 응답이 바로 믿음이다믿음에 따르는 순명이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자기에 맞게 옳은 일에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님의 뜻이기에 받아들이는 것이다물론 거기에는 고통과 시련이 동반할 수도 있다.

   

모든 갈등과 상처를 가슴에 담고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한 요셉의 태도를 생각해 보자일반적으로 약혼자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무리 조용히 처리한다고 해도 율법에 의해 처리해야 하므로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고결국 돌에 맞아 죽을 운명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그러나 요셉은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려 율법을 어기며(?) 마리아를 보호한 사랑의 사람이었다. 요셉은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었다. 힘겹고 어려워하는 이들과 마음을 나누는 사람, 만나면 위로와 기쁨이 되고 기쁨이 되고 하느님의 축복이 되어주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오심과 눈앞에 다가와 있는 성탄은 그분의 사랑을 믿는 모두의 용기 있고 폭넓은 협조 없이는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협조를 원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마땅한 응답을 드리는 우리였으면 한다. 마라나타! 오소서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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