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4 주일 김두진(바오로)신부님 강론

11 22일 연중 제 34주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왕이라 일컫는 것은 그분을 과거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메시아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 예수님 시대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왕으로 와서, 세상
만방을 통치하는 강대국 이스라엘을 만들어 줄 것이라 믿었다
. 하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우리가 아는 대로
그들의 것과 같지 않았다
. 그러나 그분의 죽음 후, 그분이
부활하여 살아 계신다는 믿음이 생기면서
, 제자들은 그분이 열어놓은 새로운 삶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로마 6,4)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 신앙은 그 새로운 삶을 사는 데에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지난주에 이어 듣는 최후심판의 이야기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가치관을 설명한다. 오늘의 이야기에
열거된 사람들은 굶주린 이
, 목마른 이, 나그네, 헐벗은 이, 병든 이, 감옥에
갇힌 이들인데 이들은 한 마디로 어려움에 처한
, 불행한 사람들이다. 오늘
복음은 그런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 보살피며 살라고 말하고 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는 말씀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도 하느님의 자녀이고
, 하느님은 그들도 버리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먼저 할 일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형제자매들을 최선을 다해 보살피는 것이 구원이라는 말씀이다
.

 

예수님은 유대교가 하느님을 빙자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차별의 벽을 만드는 것을 거부하셨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하느님이시다. 유대교는 굶주리는 이, 헐벗은 이, 병든 이, 감옥에
갇힌 이는 모두 하느님이 버렸다고 가르쳤지만
, 예수님은 하느님이 그런 이들과 함께 하신다고 가르치셨다. 사람은 구실만 있으면,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먹을 것을 가진 사람이 굶주리는 이를 보면서, 옷을 잘 입은 사람이
헐벗은 이를 보면서
,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잘 지키지 못하는 이를 보면서 우월감을 느낀다. 예수님 시대 율사와 사제들은 율법과 제사의례를 구실로 많은 이들을 죄인으로 판단하면서, 자기들 스스로는 의인이라는 우월감을 가졌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이런
생각을 거부하셨다
. 자기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하느님을 보지 못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곧이 보잘것없는 형제 중에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당신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데,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우월감을 가질 수 없는 이들이다
. 물론 그런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못된다. 다른 사람들의 연민과 보살핌만이 그들이 같은 인간으로 받아들인다. 연민과
보살핌은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 실천하신 것이었다. 예수님은
그 은혜로운 체험으로 신앙인들은 아버지를 배우게 하신다
.

 

사랑에 굶주리고 관심에 목마르며 외로운 나그네인 이는 누구일까?
마음이 헐벗어 고독한 이들은 누구이고 마음의 병으로 자기 자신에 갇혀진 아는 누구일까?
사람이 예수님 당신이라고 말씀하신다
. 그렇다! 잔잔한 호숫가에
돌을 던지면 그 돌 떨어진 자리부터 파도가 일듯
, 나 스스로부터 변하지 않으면, 내 주위로부터 사랑이 실천되지 않으면 우리가 하는 애덕 행위는 실수가 될 수 있다. 먼저 나로부터 가장 사랑에 굶주리고, 나로부터 가장 관심에 목마르며, 그리고 나 때문에 외로움을 당하는 사람 그리고 나로 인해 마음의 고독을 느끼고 나 때문에 마음의 병이 생기며, 나 때문에 스스로에 갇혀 사는 사람이 누구일까?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고 있고 바로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하신다
.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이 우리에겐
누구신가
? 여기서, 지금 그들을 사랑하시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