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하나가 ……

 

 

 

 

 

밀알하나가……

 

 

유행가를 듣다보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는 말이 헷갈립니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는 말도 그렇고, 오늘 예수님은

'죽어야 산다.'라고 하십니다. 알아들을 듯, 아닐 듯한 표현이 참 어렵습니다.

 

요한복음의 전반부(1,19-12,50)는 예수님의 기적과 경이로운 행적들, 즉 '표징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므로 '표징의 책'이라 하고 후반부

(13,1-21,25)는 그분의 수난과 죽음이 왜 영광과 구원이 되는지를 설명하기에 '영광의 책'으로 불립니다. 오늘 복음의 본문은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그리스인들에게(12,21-22) ' 영광의 때가 왔음'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스에는 훌륭한 철학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리스에는 그리스 신화도 유명하지만 그리스철학은 기원전 6세기 밀레투스학파로부터 시작되어 기원후 6세기 전반에 신플라톤

학파의 학교가 폐쇄되기까지 이어진 철학으로 우주의 기원과 자연 현상의 생성, 변화, 소멸에 대한 합리적 설명과 인간 세계의 정치적, 윤리적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체계화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리스인이 잠깐 등장하는 이유가 율법과 예언서들을 전혀 모르고, 합리적 사고를 하는 비 유대인이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말하고자 함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가 왔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영광'을 받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부활의 영광도 십자가에 높이 달리는 일을 통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영광스럽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분의 죽음이 그분이 얼마나 중요한 분이신지를 들어냈으며, 사람들은 그 사실에 큰 감동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죽음이 왜 중요하고, 감동스런 것인지 설명합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어서 열매를 맺듯이, 예수님의 삶은 그분의 죽음 후, 제자들 안에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제자들에게도 알아듣기 힘든 혼란이었고,

실패였지만,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그 죽음의 신비를 알아듣게 되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그분의 삶을 배워 실천하게 됩니다.

십자가는 합리적인 생각으로는 실패와 죽음의 비극이었지만, 지혜의 생각으로는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실천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의 율사들은 스스로 율법에 매여 살기에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벌을 주신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하느님은 자비하지 않기에 잘못을 하면 잘못한 만큼 벌을 주시는 무서운 하느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하느님은 자비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느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한 사람만 소중히 생각하지 말고, 자비하신 하느님에게 신뢰하면서 그 자비를 스스로 실천하여, 하느님의 나라가 오게 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인간과 함께 계시며, 돌보아주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이라는 의미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그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생명을 이어받아 그 생명이 하는 일을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이를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에게 병은 하느님이 주신 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교도인 백인대장의 종(루가7,1-10)과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딸(마르 7, 24-30)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종교가 다르다고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 우는 사람, 병든 사람,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 이런 불행한 생명들을 당신 한 몸보다 더 소중히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이 밀알이었던 그분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느님이 아끼시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복음이 말하는,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 열매 맺는’ 삶입니다. 이런 삶이 예수님의 삶이었고,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는 우리가 그분을 따라 사는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일을 보고, 그것을 실천함으로, 그분과 같은 열매를 맺겠다고 약속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신앙은 자기 한 사람 잘 되고, 존경과 찬양을 받는 길이 아닙니다. 신앙은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 앞에 강하게 처세하여 입신출세하고, 그것을 하느님이 베푸셨다고 주장하는 속물들의 처세술은 더욱 더 아닙니다. 이런 것들이 예수님을 따라 맺은 열매라면 믿음은 혼돈 그 자체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밀알의 방식을 배워 실천함으로 우리 스스로가 밀알이 됨으로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 신앙인의 삶이어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두려움과 마음의 산란함으로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두려운 상황에서도 무엇을 믿고 무엇을 감내해야 하는지를 구분하여 실행하는 은총이며, 고통은 두려움과 혼란을 초래하지만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게 함으로써 가장 진정한 내면의 힘을 만나게 해주는 영광 앞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요한 12,27-28)

 

알아듣기 어려운 말씀도 예수님의 삶에 비추어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그러나 실천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영광을 알아들었다면 우리도 그 십자가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밀알 하나의 죽음과 열매는 그저 머리속의 상상이 아니고 우리의 삶의 연속이어야 합니다. 밀알의 죽음은 합리적 생각으론 끝이겠지만, 높이 올려진 십자가를 통해서는 영원의 시작인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 김 두진(바오로)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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