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 6 주일 김두진바오로 신부님 강론

5 9일 부활 제 6 주일
복음 묵상

사랑이란 말씀이 오늘 우리가 들은 제 2독서에서만
열 차례 나오고 오늘 복음에서는 아홉 차례나 반복된다
.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여러분을
사랑했습니다
.” , 당신께서 받으신 사랑으로 제자들을 선택하고
사랑하셨다는 뜻이다
. 그러니 이제 우리들도 예수님에게서 받은 사랑의 삶을 살아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내 보이고 다시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된다
. 기쁨은 예수님과 결속되어 있고 제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며 예수님과 함께한 공동체 안에서 가득 할
수 있는 종말론적 기쁨이다
. 그리스도의 현존과 더불어 주어지고 체험되는 기쁨이므로 아무도 뺐지 못하는
영원한 기쁨이다
. 그 기쁨은 사랑의 계명을 지키면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기쁨이다. 즉 친구라는 칭호는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명하는 사랑의 계명을 지키게 하는 동기가 된다. 오늘 복음에서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
.’고 말한다. , 죽기까지
스스로를 내어 주신 예수님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시고 가르치셨다. 사람들의 불행은 하느님이 내리신 벌이라고 생각하였고, 율법을 지키지
않거나
, 제물 봉헌에 잘하지 못하면, 하느님이 벌을 준다고
가르친 유다교의 지도자와는 달리 예수님은 하느님이 사랑이고
,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버리지도, 벌주지도 않으신다고 가르치셨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도
, 예수님은 하느님을 사랑이라 믿고, 그분을
아버지라 부르시며
, 그분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빌면서 죽어 가셨다. 오늘
복음은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무는일이었다고 하며
우리도 그 사랑 안에 머물 것을 권한다
.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 것이다.’ 포도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을 수 있는 것은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는 사랑의 수액 즉, 사랑의 DNA 때문이다.

 

하느님은 전능하고 강하신 분이시지만, 그분은
사랑이시다
. 사랑은 상대를 제압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낮추어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 하느님은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신다. 다행스럽게도 하느님은 계시지 않는 듯, 우리와 함께 하신다. 만약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무모님처럼 우리가 잘못할 때 마다 우리를 간섭하신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오만하지
않고
, 겸손하게 함께 있는 법 아니던가? 사랑 안에 크게
돋보이지 않는 것이 겸손일지도 모른다
. 겸손은 비굴함이 아니다. 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처신하는 종은 겸손하지 않고 비굴한 종이다
. 높은 사람의 마음에 들어 한 자리 얻어 보려고
소신도 버리고 스스로를 낮추는 행동을 우스갯소리로 꼬리친다고 한다
. 그 반대로 겸손은 상대방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마음이다
. 겸손하지 못한 사랑은 일방적이고, 상대를
지배하는데
, 그것은 횡포이지 사랑은 아닐 것이다. 사랑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횡포가 벌어지고 있는가
? 그러나 생명에 숨결이 있듯 사랑에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

 

하느님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려면, 예수님이
어떤 겸손이었는지를 보아야 한다
. 가난한 이, 병든 이, 세리, 죄인 등과 예수님은 함께 어울리셨다. 상대방에 맞추어서 스스로를 낮춘 겸손. 우리에게 겸손은 어렵다. 우리는 이웃의 처지를 외면하고, 우리 자신을 긍정하며 과시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오늘 복음의
말씀이다
. 우리가 초라하지만,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듯이, 우리 이웃이 우리 앞에 초라하게 보여도, 그 이웃과 함께 있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
우리가 머무는 길이다
.